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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28402656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4-09-29
책 소개
목차
바닷가 산학 수업
연꽃배미의 넓이
주막집 아들 동이
돌아온 연이
동이의 수난
역관 시인 홍세태
드디어 시작하다
웃대 중인 예술가들과 노닐다
『산법통종』의 오류
청나라 사력 하국주와의 대결
첫 권을 완성하다
가짜와 진짜
산학서 집필의 위기
진정한 벗이란
마지막 웃대 여행
유수석의 『구고술요도해』
남양유람
불행은 혼자 오는 법이 없다
『구일집』을 완성하다
책속에서
“네가 정말 그 넓이를 잴 수 있다는 거니?”
동그랗게 뜬 그 애의 눈과 마주치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떨구었다.
“아, 아니 뭐.”
왠지 그 여자애 앞에서 못 한다는 말을 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아, 예.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아차 싶었지만 다시 번복할 수도 없었다.
“그래? 네 이름이 뭐니?”
“예? 아, 예. 정하입니다. 홍정하.”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큰남이 아버지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인지 얼른 말을 이었다.
“예. 호조 산학교수로 계시는 홍재원 어른 큰아들입니다.”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아이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여쭈어 볼게. 내 이름은 연이야.”
그렇게 말하고 들어갔던 연이는 조금 뒤 할아버지 손을 잡고 대문께로 나왔다. 그 뒤에 연이 아버지도 따라 나왔다.
“이 애가 그 애냐? 한번 재 보라고 해라. 억울하게 도지를 많이 받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정확하게 계산해 줄 수 있다면야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_「연꽃배미의 넓이」 중에서
“나는 나중에…… 네가 산학책을 썼으면 한다.”
“예?”
“우리 집안 전체가 산학을 하고 있지 않니? 외가, 친가, 사촌, 육촌 모두 도와줄 수 있으니 네가 중심이 되어 산학책을 쓰면 어떻겠니?”
“제가요? 허나 책을 쓰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쉽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하지만 가깝게는 네 외가 큰할아버지인 여휴 경선징 어른도 산학책을 쓰시지 않았느냐?”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어찌 감히 여휴 할아버지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꼭 못 쓸 것도 없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학문이다만 산학의 중요성을 알아줄 때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
“변하지 않는 세상이 있다더냐? 청나라를 다녀온 유학자들 말도 세상이 많이 변해 가고 있다고 하더구나. 산학은 정말 중요하다. 내 생각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의 근본이다.” _「역관 시인 홍세태」 중에서
“사력의 수학 실력은 천하 네 번째요. 이분의 수학 실력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소. 당신들은 도저히 이분에게 견줄 수 없을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두 사람을 무시하는 말을 하더니 이번에는 두손을 들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왜 그쪽에서는 문제를 내지 않는 것이오? 문제를 낼 자신이 없으시오?”
“그럴 리가요. 저희가 몇 문제 내겠습니다. 하하하.”
유수석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 그럼 질문을 해 보시오.”
하국주를 추켜올리며 물을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태도였다. 감히 너희가 무슨 문제를 내겠느냐는 표정이 몹시 거슬렸지만 나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뒤 문제를 냈다.
“둥근 옥 한 덩이가 있습니다. 그 안에 정육면체의 옥이 내접하고 있는데 이 정육면체를 빼낸 껍질의 무게가 265근 15냥 5전입니다. 껍질의 가장 두꺼운 곳의 두께는 4치 5푼입니다. 정육면체 한 모서리의 길이는 얼마입니까? 그리고 옥의 지름은 얼마입니까?”
이 문제는 내가 직접 만든 문제였다. 문제를 들으며 하국주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듯하더니 종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 답을 알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점점 더 낯빛이 검붉어지더니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까지 맺혔다. 사신 아제도가 옆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끼어들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_「청나라 사력 하국주와의 대결」 중에서
“무슨 병인가요?”
“비즉기소悲則氣消.”
“비즉기소?”
웃대에 살 때 의원들과 만난 적이 더러 있어 얻어 들은 풍월이 있었다.
“무슨 그리 슬픈 일을 당하셨소? 한마디로 몸이 슬픔에 겨워 물에 빠진 사람처럼 축 처져 있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그는 말문이 턱 막혔다. 몸은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낯빛과 오장육부와 팔다리는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사즉기결思則氣結이라.”
“…….”
“생각이 너무 많아 기가 맺혔다는 뜻입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즐겁게 생각하고 섭생을 잘하면서 좀 쉬십시오.”
“하는 일도 별로 없소만.”
“본인이 잘 알 겁니다. 쉬지 않고 강행하면 하고자 하는 일을 영원히 끝마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_「산학서 집필의 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