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동유럽소설
· ISBN : 9788931022865
· 쪽수 : 428쪽
· 출판일 : 2022-10-30
책 소개
목차
1. 쿠퍼, 유한 권능의 신
2. 검투사의 등장. 종이 울리다
3. 만남 셋
4. x에 대한 상념
5. 작은 말은 비틀거린다
6. 쿠르트 게르버라는 한 인간
7. 쿠르트 게르버, 출석번호 7번
8. 실패로 가는 길은 고단하다
9. “수요일 10시.” 통속소설
10. 양 전선에 불어닥친 폭풍
11. 작은 말은 쓰러진다
12. 졸업시험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아르투어 쿠퍼는 학기 중 대부분 그렇듯 그날 대단히 만족했다. 공허한 여름 두 달을 보낸 후 다시 세워진 제국에 온 마음을 다해 뛰어들었다. 공허했던 이유는, 학생들 사이에서 신으로 거닐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으로 거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람도 그의 전능한 권력 앞에서 부들부들 떨게 만들 수 없어서 공허했으며, 좌지우지하는 지배욕의 규범을 눈에 보이는 많은 것에 강요할 수 없어서 공허했다.
그녀는 어린 여자애의 흔한 이상조차 품은 적이 없었다. 열세 살 때 처음 키스를 허락한 남자는 간절히 기다린 그림엽서의 아도니스가 아니라, 여름 방학 때 우연히 이웃집에 묵은 서른 살 남짓의 은행원이었다. 머리카락이 성긴 그 은행원은 마침 그날 저녁 사람들이 리자를 혼자 집에 남겨둔 기회를 이용한 것뿐이었다. 그래도 당시 리자는 상대가 어른이라는 사실에 상당히 우쭐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온 그녀는 환상적인 기대에 차서, 성적 욕망에 눈뜬 학교 친구들을 경멸하며 거절하고, 다른 사람이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것에 몹시 실망했다. 매끄러운 말과 은밀한 성적 농담을 늘어놓는 무용 강습 동료 소년들은 지루했지만, 제일 예쁜 자신이 유일하게 ‘숭배자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싫어서 이 남자 저 남자 가리지 않고 입술을 허락해 벌써 열다섯 살에 키스가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예전에,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르는 예전에 쿠르트는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몸을 바칠 수 있었다. 어쩌면 악의 없이 잘못 내렸을 수 있는 경고, 교수가 법정 앞에서 책임질 수 있는 정당한 학급일지 기재, 모진 말, 부당하게 준 성적…… 오, 그때 쿠르트 게르버는 일어나 마지막까지 싸우고, 주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주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을 자기 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일’이 그에게 중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