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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31023794
· 쪽수 : 360쪽
· 출판일 : 2024-10-1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회화의 기원과 기하학
01 회화의 기원 나르키소스
02 비례, 다빈치와 피타고라스
03 기하학이자 철학, 원근법의 탄생
04 르네 마그리트와 비유클리드 기하학
05 메디치 가문과 자연철학의 부활
06 베네치아 미술과 노름꾼들의 수학
예술과 과학의 유용성
07 예술과 과학에서 쓸모란?
08 신탁과 점성술 그리고 천문학
09 〈브레다 성의 함락〉과 메르카토르 도법
10 비잔틴 제국의 멸망과 코페르니쿠스의 등장
11 티치아노와 인연, 칼카르와 베살리우스
패러다임의 변화, 그 지난한 과정
12 고흐와 브루노의 강렬한 삶
13 “별들에게 물어봐” 튀코 브라헤와 허블
14 렘브란트의 원, 케플러의 타원
15 브뤼헐의 철학, 갈릴레이의 종교
대중과 가까이, 더 가까이
16 미술에서 이론, 과학에서 글쓰기
17 리히텐슈타인의 만화와 과학의 대중화
18 사과, 세잔과 뉴턴
19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논란과 예술에서의 표절
20 블레이크와 뉴턴: 이성과 감성의 조화
21 추상의 탄생과 연금술
22 〈마라의 죽음〉과 라부아지에
23 실력으로 입증하라, 우첼로와 패러데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한 서술
24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맥스웰 방정식
25 색채에 대한 회의, 괴테와 터너
26 에곤 실레와 제멜바이스의 불행
27 〈가죽을 벗긴 소〉와 파스퇴르
28 흑사병과 세균 그리고 바이러스
29 실재와 허상: 클림트의 황금비와 볼츠만의 불행
아인슈타인의 학문 세계
30 모네의 빛과 특수상대성이론
31 에셔와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시공간의 상대성’
32 수학의 덕목, 아인슈타인과 힐베르트
새로운 차원의 과학, 양자역학
33 차원을 달리한 피카소와 양자역학
34 발라의 닥스훈트, 슈뢰딩거의 고양이
35 대가들이 보여주는 우정과 논쟁
36 잭슨 폴록의 프랙털과 만물 이론
37 “넌 과학이 재미있니?” 고갱과 힉스입자
인간―지구―우주의 하모니
38 ‘창백하고 푸른 점’ 지구의 나이와 호기심
39 칸딘스키와 아인슈타인의 실수, 그 결과는?
40 사실과 믿음 사이, 〈천문학자〉와 사제 르메트르
41 기요맹의 복권과 우주배경복사
42 보스의 상상과 초기 우주 38만 년까지
43 생명의 기원과 메리안의 곤충 도감
44 요제프 보이스와 토끼 그리고 DNA
45 패러다임의 전환, 뒤샹과 찰스 다윈
46 지난함: 예술에서는 창조로, 과학에서는 사실로
과학과 윤리, 다시 철학으로
47 ‘카르페 디엠’과 DNA 이중나선 구조
48 〈베르툼누스〉와 속씨식물의 유혹
49 먹이사슬 위에서 비로소 고민하는 사피엔스
50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와 과학 윤리의 탄생
51 제1차 세계대전과 윤리의 확장
52 핵, 예술가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진정한 르네상스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회화의 기원을 나르키소스에서 찾았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수면 위에 비친 나르키소스의 환영이 그림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망막에 맺힌 상은 평면적이지만 뇌의 작용으로 사물을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회화는 다르다. 보는 사람이 그림을 현실처럼 느끼게 하려면, 특수한 작도법이 필요하다. 이른바 회화의 평면성을 속이고, 착시효과를 유도하는 선 원근법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유클리드의 산책>에서 평행선 공준을 부정하려 했다. 이를 위해 창밖에 탑과 큰길 모두 삼각형 형태로 나란히 배치했다. 실제 원뿔형 탑은 그림처럼 그 끝이 꼭짓점으로 모인다. 하지만 오른편 큰길이 실제로는 평행선을 이루는데도, 탑의 꼭짓점처럼 서로 만나는 것으로 묘사했다. 한마디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왜곡이다. 하지만 이것이 마그리트의 잘못은 아니다. 지구 표면이 휘어져 있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곡률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모든 평행선은 결국, 무한원점에서 만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조심스러운 성격의 오시안더는 자신의 서문을 익명으로 책에 끼워 넣었다. 마치 코페르니쿠스 본인이 쓴 글처럼 보였다. 서문에는 태양중심설이 천문학적 가설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사실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입문할 때보다 더 한심한 바보가 되어 이 학문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썼다. 그래서인지 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글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책을 받아 본 교황 바오로 3세와 교회에서도 금서로 분류하지 않았다. 사후 300여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세상의 빛을 받았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가 비겁했다기보다는 오시안더의 배려 덕분에 평안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