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19062
· 쪽수 : 278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철
에필로그
해설 철의 시대를 기억하라·소영현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동틀 녘, 무리를 이룬 발소리가 마을을 흔들어 깨웠다. 그것은 조선소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발소리였다. 발소리는 점점 더 규칙적이고 우렁차졌으며 빨라지고 있었다. 김만도는 걸음을 재촉하며, 무리를 이룬 발소리에 자신의 발소리가 무참히 섞여드는 것을 느꼈다. 밤새 낀 안개가 채 걷히지 않아 노동자들은 마치 죽은 물고기가 물에 떠내려가듯 한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무리를 이룬 발소리가 척, 척, 척 만들어내는 울림에 따라 마을은 지진에 든 듯 흔들렸다. 언 송장에 다시 피가 흐르듯, 밤새 죽은 듯 잠들었던 마을이 꿈틀꿈틀 깨어났다. - 본문 9쪽 중에서
죽은 여자아이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마을에 퍼졌다. 소문은 이러했다. 건어물 집 여자는 녹이 딸의 막힌 목을 뚫어줄 것이라고 믿고는, 발버둥 치는 딸의 입속으로 녹을 마구 퍼 넣었고, 한 솥단지나 되는 녹을 퍼 넣은 뒤에야 딸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파랗게 질린 딸을 끌어안고 두려움에 떨던 건어물 집 여자는, 늦은 밤 딸을 몰래 광포천에 내다 버렸다. 순전히 녹 때문에 건어물 집 딸이 비명횡사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녹이 몹쓸 병을 낫게 하는 신비한 효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여자아이가 죽은 것 때문에 날마다 복용하던 녹을 끊는 늙은이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쇠와 쇠에서 발생하는 녹의 효용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본문 40~41쪽 중에서
“시체잖아!”
황개남이 눈이 동그래져서는 소리 질렀다. 그것은 물에 퉁퉁 불어터진 꼽추의 시신이었다. 등에 난 혹을 하늘로 향하고서는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틀니들이 허기진 물고기들처럼 꼽추의 몸뚱이에 바글바글 달라붙어 있었다. 죽은 비둘기의 날개가 축복이라도 하듯 꼽추의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혹에 박힌 쇠못 주변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한순간 쇠못이 쑥 뽑아져 나왔다. 마을에서 쇠 징발이 있던 해 조선소 노동자 김태식이 박아 넣었던 쇠못은, 허무할 만큼 빠르게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저기, 철선이다!”
그때 누군가 마을이 떠나가도록 소리 질렀고, 지붕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북쪽을 향해 젖은 몸을 일으켰다.
그 누군가 또 “철선이다!” 하고 소리 질렀지만 햇빛이 너무나 눈부셔서 사람들은 철선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긴장된 침묵에 잠긴 채 서로의 눈치만 살피던 사람들은 저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철선’을 탄식처럼 외쳐댔다. 언젠가 만국박람회장에서처럼, 빛이 한순간 점멸하듯 사라져버릴까 두려워하며…… - 본문 259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