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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9064423
· 쪽수 : 147쪽
· 출판일 : 2026-06-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왜 그가 나를 선택했는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눈에 띄는 외모가 아니었다. 허리가 잘록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레이는 ‘죽여주는 미남’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런 표현이 유행하지 않던 때였다. 1975년 당시 나는 레이가 죽여주는 미남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십대 잡지를 읽고 있었고, 1975년에 머릿속에 떠오른 표현은 당시 십대들이 쓰던 문구였다. 레이는 ‘육감적’이었다.
레이의 지퍼 슬라이더가 쇄골을 지나던 순간, 그쯤에서 멈추고 뭔가를 꺼내 보여 줄 거라고 생각했다. 뭔지는 몰랐다. 십자가라거나, 아내 사진이 들어 있는 작은 갑이라거나. 지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왁스 층을 따라 미끄러지듯 내려가며 배꼽에 가까워지자 그가 칼을 꺼내 들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렇게 비루하게 쪼그린 채 난도질을 당하겠구나. 가죽 옷감이 양옆으로 열리고,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지퍼가 천천히 땀에 젖은 털이 덮인 좁은 부위를 드러냈다. 하나는 가슴팍, 다른 하나는 배꼽 밑. 나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서만은 아니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땀은 노폐물에 지나지 않았다. 레이의 땀은 빛이 났다. 미모의 화룡점정. 아름다움의 묘약.
“난 레이.” 그는 손을 내 어깨에 올린 채 말했고, 나는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콜린”이라고 내뱉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처음 그의 발치에서 올려다봤던 순간과 똑같은 각도로 우러러보는 느낌이 들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살덩이를 머금고 있었을 때조차도. 그때 역시, 그에게 쾌감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나면서도 나는 수북한 털 사이로 미친 듯이 위를 올려다봤다. 그와 눈을 맞추고 싶어서.
우리가 맞닥뜨린 이래로 그는 내게 거의 처음으로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였다. 좀 허탈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미소는 미소였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가로젓더니 말했다.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가 맞닥뜨린 이래로 그는 내게 거의 처음으로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였다. 좀 허탈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미소는 미소였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가로젓더니 말했다.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질문은 답을 기대하고 건넨 게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질문이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순 없었다. “원하시는 건 뭐든지 할게요.” 입 밖으로 내뱉은 게 맞는지 확신이 안 들어서 한 번 더 말했다. 혹시나 머릿속으로만 말한 건지도 모르니까. 왜냐하면 이 순간은 내게 기회였고 그가 꼭 들어야 했으므로. “원하시는 건 뭐든지 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