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19826
· 쪽수 : 295쪽
책 소개
목차
나의 집을 떠나며─관계 6
벽─관계 7
우리 빗물이 되어 다시 바다에서 만난다면─ 관계 8
안과 밖─관계 12
숲 이야기─관계 10
저자소개
책속에서
엷은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면서 지나갔다.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하나둘씩 상여 위로 떨어졌다. 오동나무 넓은 잎이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와 상여 위에 떨어졌다. 도토리 나뭇잎도 내려와 앉았다. 벚나무 잎도, 소나무 등걸이 휘감겨 있던 넝쿨 잎도 떨어졌다. 순식간에 갖가지 잎들이 상여 위에 가득 찼다. 낙엽만이 아니었다. 싱싱한 소나무와 동백나무들도 꽃상여 위에 몇 개씩 잎을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숲 이야기─10' 중에서
“주님, 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는 지금까지도 진정으로 경천이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를 제 품에 껴안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그 귀한 말씀에 의지해서 제 혈육을 살해한 그를 제 아들로 삼고 살아왔습니다만, 아직도 저는 그를 아들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 성령님이시여, 이렇게 사악하고 사랑 없는 저를 용서해주시고, 제 굳어진 마음을 깨뜨려주시옵소서. 제가 그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도록 주님과 같은 긍휼을 제게 허락해주시옵소서. 흑흑……”
아버지의 흐느끼는 기도 소리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경천은 숨이 가빴다. 지금까지 허위의 옷을 입고 사랑의 화신처럼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에 어쩔 바를 몰랐다. 어머니 일기장에서 그 마음을 알았을 때보다도 더했다. 강단에서 주님의 거룩한 말씀을 유창한 말로 전하던 그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것이 허위의 탈을 쓴 능란한 연기처럼 생각되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자신은 아버지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죄책감에 눌려 살아왔다. 그의 연극에 빠져 속아 살아왔다.
경천은 자기도 모르게 방문을 와락 밀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기도하던 목사가 뒤를 돌아봤다. 자기를 쏘아보는 경천의 핏발선 눈에서 살의 같은 것을 느꼈다.
“허위의 탈을 쓴 배신자!”
경천이가 고함을 지르면서 방안으로 뛰어들갔던가?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그가 아버지를 쏘아보다가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뒤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경천아’하는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경사가 심한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그때 다시 뒤에서 부르짖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집을 뛰쳐나와 차를 몰았다.
그날 저녁 늦도록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의 부음을 받았다. - '벽─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