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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6469924
· 쪽수 : 480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묻어버린 그 전쟁’을 다시 이야기한다
1. 평양 가는 길
2. 떠난 자와 남은 자
3. 길에서 만난 사람들
4. 버릴 수 없는 유산
5. 시간의 양식(糧食)
6. 나그네
7. 광야에서
8. 고향에 돌아와서
해설 미증유의 역사와 실존의 무게 _이재복
저자소개
책속에서
“심정례!”
그는 입속으로 아내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동안 수없이 불렀던 이름이다. 그 소녀티를 갓 벗은 아내의 나이를 헤아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22에 47을 더하면, 예순아홉! 예순아홉? 70대 노파의 얼굴이 그 사진 위에 포개졌다.
“훈식아!”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제는 50을 바라보는 장년이다. 아내는 이웃집 할머니요 아들은 친척 아저씨로 다가왔다. 승규는 평양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20대의 청년으로 남아 있다. 고향을 떠나온 후부터 시간을 정지시켜놓고 살아온 것이다.
이제 그 나그네 생활을 청산하려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 자신의 안전만을 위해 아내와 자식과 형제와 교회를 버리고 떠났던 그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 여행은 단지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버리고 떠나온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 비겁을 참회하기 위해서 평양으로 돌아간다. 한강을 건너지 않고 교회를 지키려 남았던 도경빈을 만나러 간다.
흘러내리던 눈물이 갑자기 멈추더니 알 수 없는 분노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정한 사람, 만삭이 된 아내를 남에게 맡겨두고 교회로 돌아간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소? 그 물음은 곧 자신에게 돌아왔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재규와 재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남편의 실체를 정부에서 알았으니 어쩌면 더 이상 내가 교직에 머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직장을 떠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25년 전에 떠난 남편 일이 오늘을 살고 있는 가족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 화났다.
승규는 그 사태를 당하고서 큰 혼란에 빠졌다. 몇 시간 전에 그가 기도하고 격려해준 그 사병들이 분노의 노예가 되어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죽였다. 그가 병사들 막사를 찾아다니면서 내일의 작전을 위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격려하고 위로해주었는데, 그것이 결국 적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만들었던가? 생각할수록 부끄러웠다.
“주님, 제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들에게 주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이 무엇입니까? 주님, 저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승규는 연기에 휩싸여 있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