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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32021621
· 쪽수 : 440쪽
책 소개
목차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
옮긴이 해설 | 머릿속의 장벽 - 분단 국민의 의식세계에 관한 문학적 탐구
작가연보
기획의 말
책속에서
통일에의 의지와 민족의 존속이 공식적으로 얼마나 자주 호소되는지, 그 빈도수에서 그에 부합하는 감정이 살아 있다고 추론하지 않는 게 올바를 것이다. […] 그들이 느끼는 분단의 고통이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언젠가 느꼈던 강렬한 감정을 애통해하는 연인과 같다. 독일에서는 시간이 상처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고통의 느낌을 없애버리는 것 같다.
서독은 그녀에게 있어 모순과 어중간함과 텅 빈 약속들이 엉켜 있는 덩어리, 표면의 열로만 덥혀지고 그 아래는 영원히 얼어붙어 있는 다른 땅덩어리였다. 이곳에서 인간관계는 맺어졌다가는 금방 다시 끊기고, 이미 내일이면 잊어버릴 이름을 묻고, 분명 안 할 것이면서도 전화하겠다고 약속한다. 가짜 웃음, 인조 치아들. 그녀의 정치적 환멸은 우선은 그렇게까지 사회의 반공적인 경향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말뿐인 반공주의의 말투, 아무것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에 해당하는 거였다. […] 서독은 가짜며 거짓말투성이였고, 그래서 레나는 어린아이의 진실감을 가지고 원문을 요구했다.
머릿속의 장벽을 허무는 데는 어느 철거 기업이 눈에 보이는 장벽을 허무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포머러와 나는 둘 다 아직도 바람에 있어서만큼은 각자의 국가로부터 거리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입에서 국가가 말을 하지 않고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 소유를 나타내는 “너희들”과 “우리들” 혹은 “우리 편에서는”과 “너희 편에서는” 같은 말들은 매번 독-독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때마다 듣게 되는 말인데, 그건 단순히 국적 표시를 줄인 말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것은 개개의 정치적인 선택을 넘어선 곳에서도 관철되는 일종의 소속감을 나타낸다. 두 대화 상대자가 이 줄임말 속에 담겨 있는 교훈을 암송하고 나서야 비로소, 여전히 그들 각자에겐 장벽 뒤의 것인 삶에 관해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