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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2022307
· 쪽수 : 155쪽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無의 매혹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늘
반 고흐의 귀
無의 매혹
회전문
一生
비 오는 날
꽃씨에 대한 명상
축제
구멍에 관한 사색
사라지는 얼굴
길 위에 서서
잠깐씩
네가 없는 곳
제2부 춤추는 시계추
춤추는 시계추
신성한 식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바다
회전목마
째깍째깍
모래시계 속에서 수족관
흙 한 줌
생각하는 인형
없는 주어
한 개의 모래 알갱이
조금 떨어진 곳
어느 봄날, 백목련 나무 밑에서
고장 난 시계
분수대 앞에서
환청
제3부 생활의 발견
마네킹 일기
한 씨네 산양 이야기
생활의 발견
지네
물질처럼
이상한 공연
식욕에 관한 고민
그 정원에서
이중생활
세월
냄새
호수
부끄러운 원근법
고독
붉은 달리아 꽃들
곡예사
자화상
오리
동행
제4부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비밀
길거리에 핀 이름 모를 잡초
꿈의 해석
죽음에 대한 명상
봄비
심연(深淵) 1
심연(深淵) 2
종착역
잠
거울 속의 눈사람
그 나무 앞에서
아름다운 연애
그 순간이 지나가면
포옹
충돌
그곳에서
너를 어떻게 사랑할까
바람 한 줄기
해설|그대 영혼 속에 지네가 살아 있다ㆍ정과리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무는 겨울 들판에 서 있었다
나무는 장신구를 떼어버리듯 사소한 귀들을 떨어뜨렸다
모호한 악기들처럼 나무를 흔들던 잎사귀들이 사라졌다
흔들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나무는
늘 귀가 아팠다
허공이 흔들리는 잎사귀들로 꽉 채워져서
나무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세상을 떠돌며 바람이 묻혀온 울음소리들이
나무의 귓속에 소용돌이를 일으키곤 했다
제 몸속의 것이 아닌 울음소리들이 제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까지
나무는 겨울 들판에 서 있었다
시끄러운 귀들이 죽을 때마다 해바라기가 피고 별이 빛났다
나무는 간신히 한 그루의 텅 빈 귀가 된 것이다
-「반 고흐의 귀」 전문
사람들은 옷을 입는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누드 같은 옷을 사지만
이 사람은 옷에 대해 과대망상을 갖고 있다
이 사람은 밤마다 벌거벗은 임금님 꿈을 꾼다
이 사람의 외투는 명품이다
이 사람의 외투는 명품이 아니다
이 사람의 외투는 따뜻하지 않다
이 사람은 거머리처럼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외투를 벗을 수 없다
이 사람이 다른 외투를 선택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이 된다
외투는 강박 충동이거나 만장일치로 설계된 함정이거나 몽상이다
나는 거짓말들을 수집해 외투를 만들지도 모른다
너는 대형 천막을 걸친 난쟁이처럼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꿈의 해석」 전문
[뒤표지 글]
지각한다는 것은? 이 물음이 오랜 동안 나와 동행한다. 한 가닥의 빛, 한 줌의 흙, 한 움큼의 먼지, 한 개의 물방울, 한 줄기 바람, 구름, 하늘, 바다, 모래 알갱이들, 식물들, 동물들, 도시의 풍경들 그리고 겨울 숲으로 이어지는 길들.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나를 옮기면 그곳에서 비밀스런 내부의 공간을 지각한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아주 사소한 물질이 되는 꿈을 꾼다. 사소한 풍경들 속에 내가 담겨질 때 역설적으로 내가 지각하는 것들이 무한해진다. 그 풍경들은 나를 비추는 마법의 거울 같다. 거울을 보는 나는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이다. 감각하고 묘사하면서 동시에 사유하고 판단한다. 거울 속엔 극단적인 객관과 극단적인 주관이 혼재해 있다. 거울은 현상학적인 모순들의 지향성이기도 하다.
내가 지각한 세계의 파편들을 모아 나는 어떤 구조물을 구축한다. 그 구조물은 유기적인 실체라기보다는 분산적인 운동에 가깝다. 대상들을 나의 시선으로 고정시켰다가 이내 나의 시선 밖으로 해체해버리는 실천. 그것은 한 손으로는 모래성을 쌓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모래성을 허무는 놀이에 가깝다. 지각한다는 것은 이 같은 놀이에 홀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