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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43470
· 쪽수 : 266쪽
· 출판일 : 2025-01-10
책 소개
목차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
빛 가운데 걷기
서울 오아시스
쓸 수 있는 대답
영원 없이
럭키 클로버
외출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해설 | 공백과 무한 · 김미정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누구도 그에게 인사하지 않았고, 그 또한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의 시야 안으로 들어온 그를 볼 수 있었고, 그 또한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볼 수도, 가늠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서로 무시하여 결국엔 우습게 만들었다. 일종의 질서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질서는 삶을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순서나 차례이니 그러므로 삶에 해害가 되는 기억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기. 아니, 질서는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빛 가운데 걷기」
파랑일 때의 엄마는 나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과 기본이 되는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 몇 번이고 노력했다. 올바른 젓가락질, 시계 보기, 우비 입기, 모르는 사람의 날씨 이야기를 들어주기, 밤 까기, 친구를 기다리기, 손을 뻗기, 물 없이도 알약을 삼키기. 그러고는 동그랗고 짠맛이 나는 토마토젤리를 혼자만 많이 먹었다. 나는 나중에라도 내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게 될까 봐 엄마와 나만 아는 암호를 만들어두었다. 외삼촌이 말하기를, 군대에서 암호는 길이가 길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보초를 서는 군인이 암호를 외치면 그 군인은 위험에 빠진 거라고. “아군끼리는 알아, 그 암호를.” 나는 그것을 엄마에게 말해주었고 엄마는 작은 비밀이 생긴 것처럼 즐거워하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서울 오아시스」
한번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고 정부영은 생각했다. “아닌데.” 한번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고 정부영은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은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고도 싶었지. 매일 꾸는 꿈에 대해서.” 정부영은 한번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고도 싶었다. 매일 꾸는 꿈에 대해서. “아닌데.” 정부영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런가?” 정부영은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매일 계속되는 꿈이야. 그러면 어떤 것도 더는 꿈이 아니게 돼.”
―「영원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