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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32550718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3-10-2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에덴의 동쪽에서
1.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2. 두 도시 이야기
3.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4. 나와 너, 우리
5.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6. 어메이징 그레이스
7. 인간의 품격
8. 두 개의 산
9. 니글의 이파리
10. 죄와 벌, 그 너머로
11. 그리스도를 본받아
12.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13. 비아 메디아
14. 꽃들에게 희망을
15.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
16. 인격의 발효
에필로그. 내 마음의 풍경
주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하나님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셨습니다. 구름은 노아 이후에도 그치지 않는 인간의 죄와 허물, 그로 인해 겪어야 할 고난과 역경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구름 속에 무지개가 보인다는 것은 구름을 통과하는 햇빛이 있음을 말합니다. 구름이 햇빛을 만나 합력하여 동행하니 무지개가 나옵니다. 홍수 이후에도 세상은 흠이 많겠지만, 그럴수록 은혜가 더욱 파고들 거라는 약속의 징표가 ‘무지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주시려고 우리 머리 위로 온갖 구름을 모으십니다. 바울은 이 고난의 신비를 알아차리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러고 보면 너에게 좋았던 그래서 내게도 좋았던, 무엇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공동선의 모든 순간은 구름 한 점 없이 찬란하고 눈부신 날이 아니라, 오히려 구름이 잔뜩 드리운 우리의 잿빛 일상에 찾아온 고마운 손님 같습니다.
_ “1.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중에서
성경은 들여다볼수록 ‘나와 너’의 관계의 세계와 ‘나와 그것’의 경험의 세계의 끝없는 대조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험 세계의 극치인 도시 우르를 떠난 아브라함은 일생 관계의 세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영원한 ‘너’이신 하나님의 옷자락을 바라보기도 하고 나부낌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때로 바로나 아비멜렉 등 상대를 ‘그대’가 아닌 ‘그것’으로 대하는 연약함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을 ‘그대’로 만나는 나름의 사연을 좇아 영원한 ‘그대’이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반면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잠시 관계의 세계에 머물다가, 그만 상대를 ‘그것’으로 간주하는 경험의 세계로 훌쩍 떠나고 맙니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관계의 세계를 떠나버린 나는 아무리 다채로운 인생 경험을 하더라도 결국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나다운 나’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영적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라가 아들이 없는 상실에 웃음을 잃은 것은 그가 여전히 경험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롯을 그들이 갇힌 경험의 세계에서 구원하시고, 참된 관계의 세계로 들어서도록 역사하십니다. 성경의 구원 역사는 하나님이 인류를 경험의 세계에서 구원하셔서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로 이끄시는 역사며, 그 관계에 근거하여 이웃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입니다.
_ “4.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중에서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가장 경멸하는 인간을 향한 나의 용서보다 한 치도 더 자라지 못하는 법입니다. “모든 인간은 온전해지기 위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용서라는 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 랭던 길키(Langdon Gilkey)의 조언을 되새기지 않아도 될 만큼 거뜬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가 바리새인들보다 하나님께 가깝다는 폭탄선언을 하십니다. 죄인이 의인보다 큰 사랑을 갖고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죄인이 더 큰 사랑을 하는 더 큰 존재가 된 까닭은 더 많이 용서를 받았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이 말씀은 많은 죄를 용서받은 죄인들의 남은 날에 해당되는 구절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베르 경감처럼 사랑이 부족한 왜소한 의인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리엘 주교가 놓은 용서라는 다리로 지나간 장발장처럼 사랑이 넉넉한 죄인의 자리로 이동하는 것 아닐까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용서와 사랑이 심령이 가련한 모든 이(Les Miserables)를 환대하는 하나님 나라의 과분하고도 ‘새로운 기준’(New Normal)으로 공포(公布)되었기 때문입니다.
_ “6. 어메이징 그레이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