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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신라/통일신라
· ISBN : 9788933706374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12-12-01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제1장 역사의 바다
제1절 황해의 역사환경
1. 자연조건
2. 인문환경
제2절 황해의 지중해적 성격
1. 지중해와 지중해성
⑴ 지리적 지중해
⑵ 인문적 지중해
2. ‘동아지중해’와 황해
⑴ 동아지중해론 검토
⑵ 동아시아 속의 황해
제2장 황해 개척과 진출
제1절 해양 개척과 황해 진출
1. 해양 개척의 모색
⑴ 해양세력의 도전
⑵ 해양 진출의 기반
2. 황해 진출 과정
⑴ 동해와 남해 진출
⑵ 황해로의 진출
제2절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달
1. ‘백제선’과 ‘신라선’
⑴ 백제선의 제작
⑵ 신라선의 개발
2. 황해 신항로 개척
⑴ 황해 중부 횡단항로
⑵ 황해 남부 사단항로
제3장 황해외교와 전쟁
제1절 수·당과의 사절 왕래
1. 견수사와 견당사 파견
⑴ 견수사 파견
⑵ 견당사 파견
2. 수·당 사절의 내왕
⑴ 수 사절의 내왕
⑵ 당 사절의 내왕
제2절 나당 간의 조공과 책봉
1. 대당교섭사의 추이
⑴ 모색과 동맹
⑵ 갈등, 안정, 소원
2. 조공·책봉의 실제
⑴ 신라의 조공
⑵ 당의 책봉
3. 조공·책봉의 성격
⑴ 당대當代의 조공·책봉관
⑵ 조공·책봉의 새로운 이해
제3절 황해상의 전쟁과 폭력
1. 통일전쟁기의 황해 해전
⑴ 기벌포 해전
⑵ 대동강구와 천성 해전
2. 황해 연안의 해적
⑴ 해적의 발생과 특성
⑵ 해적의 폭력 활동
제4장 황해교역과 교류
제1절 신라 하대의 황해무역
1. 황해무역의 제 양상
⑴ 교역의 유형 분류
⑵ 황해무역의 교역품
2. 황해무역의 주역
⑴ 견당사와 재당 신라인
⑵ 해적과 해상호족
3. 황해무역과 사회변동
⑴ 골품제의 동요
⑵ 지방세력의 등장
제2절 ‘서학’ 활동과 ‘서화’ 구법승
1. ‘서학’의 두 가지 개념
⑴ 원래의 서학
⑵ 새로운 서학
2. 8, 9세기의 서학 활동
⑴ 구법승의 서학 활동
⑵ 유학생과 견당사의 서학
⑶ 서학의 역사적 의의
3. 신라의 ‘서화’ 구법승
⑴ 서화 구법승의 두 부류
⑵ 서화 구법승의 재당 활동
제3절 회창폐불과 신라 불교
1. 회창폐불의 전개
⑴ 승니의 환속
⑵ 사원과 불상의 파괴
2. 신라 구법승의 동향
⑴ 외국승의 추방
⑵ 신라승의 귀국
제5장 황해 디아스포라
제1절 삼국인의 이산과 이주
1. 고구려와 백제 유민의 중국 이주
2. 신라인의 중국 이주
제2절 비운의 디아스포라 김인문
1. 대당외교와 국내 활동
⑴ 대당외교의 주역
⑵ 국내 정치 활동
2. 외교노선 갈등과 망명
⑴ 역적과 충신
⑵ 꿈의 좌절
3. 죽음과 그의 후손들
⑴ 묘지 비정 문제
⑵ 김인문의 후손
제3절 중국 산둥성 무염원과 김청
1. 무염원의 현황과 자료
⑴ 무염원지의 현황
⑵ 관련 자료의 검토
2. 신라인 김청과 신라원
⑴ 김청의 무염원 공덕
⑵ 재당 신라인과 신라원
제6장 신라의 바다
제1절 군자의 나라, 신라
1. ‘군자국’ 이미지의 형성
⑴ 상상 속의 군자국
⑵ 신라 군자국 이미지
2. 신라 군자국의 표상
⑴ 당의 군자국 인식
⑵ 군자국의 자부심
제2절 신라의 황해 경영
1. 황해교섭과 교류
2. 신라의 성쇠와 황해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유럽지중해가 서양의 중요한 역사 공간이었다면, 황해黃海는 동아시아의 역사 현장이었다. 황해는 동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이 중국 대륙과 한반도로 둘러싸였고 동남쪽에 일본이 자리 잡고 있어,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교류와 교섭의 장場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지중해가 그렇듯이, 황해는 고대 동아시아의 정치교섭과 문화교류, 그리고 경제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열린 공간이었다.
6세기 신라의 중흥과 황해 진출, 7세기 한반도 통일왕조 수립과 신라 수군의 활동, 남북국시대 신라의 번영과 활발한 해양활동 등은 신라의 국가 발전과 해양 진출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9세기 중엽 장보고張保皐가 황해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해역을 장악하고 해상상업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삼국시대부터 꾸준히 진행된 신라의 해양 진출이 그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신라가 바다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으나, 무엇보다도 바다로부터 침입하는 해양세력의 도전挑戰에 대한 응전應戰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하면 건국 초부터 나라의 존망을 위협하던 해양세력을 방어하기 위해 신라는 바다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신라는 해양세력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였고,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점차 적극적으로 해양 진출을 도모하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한반도 삼국과 중국의 여러 왕조는 황해를 징검다리 삼아 상호 외교사절단을 교환하였고, 일본과 중국의 사절 역시 주로 황해를 통해 동아시아 각 지역을 왕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의 상인들은 황해를 활동 공간으로 삼아 해상무역에 종사하였고, 각국의 유학생과 구법승들은 황해를 건너다니며 학술과 사상을 서로 교류하였다.
외교사절과 무역상인, 유학생과 구법승들이 평화롭게 오가던 황해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악화되면 가끔 전쟁의 바다로 변한다. 일찍이 누선장군 양복楊僕이 한나라 수군을 이끌고 산둥반도에서 황해를 건너 고조선을 침공하였고, 수와 당은 수차례에 걸쳐 황해를 넘어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하였으며, 발해의 장문휴張文休는 수군을 이끌고 황해를 건너 당나라 등주 일대를 유린하였다. 뿐만 아니라 황해 주변의 국가들이 정치적 혹은 사회적 혼란으로 바다를 통제할 능력이 없을 때, 황해는 해적을 비롯한 불법 집단들이 횡행하며 인명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폭력의 바다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황해는 평화와 전쟁, 그리고 폭력이 교차하는 다중多重의 공간이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