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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의학
· ISBN : 9788933706442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13-02-05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I&Brain - 풋내기 의사의 성장기
브레인을 만지는 의사를 꿈꾸다
인생에 후회되는 일 한 가지
쥐 접대 이론
동물 납품업자 전 박사
어느 13일의 금요일 밤
신경외과 의사의 팔자
세계 유일무이의 보직
배 속으로 사라진 생애 첫 연구비
청색전화, 백색전화
선생님도 한약 드세요?
정위기능 수술을 배우러 독일로 가다
아프면 병원 가야지
나의 뇌 건강법
환자는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
You&Brain - 환자가 바로 스승
아이 뇌가 없어요
종교적 신념의 수혈 거부
젊은 여성을 문진할 때의 필수 관문
선생, 겁나게 출세했소
머리가 붙은 쌍둥이
경상대학교병원에서 만난 어느 노부부
맨땅에 헤딩하기
더 이상 숨죽이고 살지 않아도 되는 병
환자가 바로 스승이다
화가의 시신경을 살리다
보쌈김치, 그리고 맛있는 개성만두
헬렌 켈러와 같은 삶의 의지로
마리아 수녀회와의 인연
어느 출판평론가의 짧은 삶
일이 꼬일 때도 있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유일의 한국인 큐레이터
사하공화국에서 온 여인
We&Brain - 약이 된 쓰디쓴 경험
당신의 뇌 건강법은?
우리에게 전두엽이 없다면
약이된 쓰디쓴 경험
그만 클래요
어느 동성애자 대학교수의 뇌생검
이보다 더 아플 순 없다
한국전쟁의 상처는 깊다
도깨비장난에 놀아나다
뇌에 사는 기생충
치매로 오진하면 안 돼요
만성경막하혈종이 만든 명의
환자와 이야기하면서 뇌수술을 하다
웃음보가 터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전이성 뇌종양 환자에게 희망을
아이가 안 생겨요
달덩이 같은 얼굴
참으로 야속하고 고약한 병
Together&Brain - 우리 시대 의료계의 자화상
미네소타 프로젝트, 그 56년 후
왜 또 왔어?
들어는 봤나? 지난 시대의 매혈기
절주운동은 시기상조인가
시장 바닥 같은 응급실 풍경
공포의 시대
멱살을 잡힌 의무장
나이가 좀 많습니다
죽음의 질에 대하여
김시창 교수를 기리며
보라매병원 사건
안타까운 의사들의 파업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며
내 마지막을 알 권리
VIP 신드롬
모르는 것이 약?
손맛
저자소개
책속에서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일부 지역에서는 돼지고기를 날로 먹기도 한다. 그런데 돼지에는 촌충이 기생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이 돼지고기를 날로 먹을 때 촌충알이 몸으로 들어가 촌충의 유충인 유구낭충이 병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벌레는 간혹 뇌까지 침범하기도 한다. 환자는 유구낭충이 제4뇌실을 침범한 상태였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사망하지만 수술을 통해서 벌레만 제거하면 완치될 수 있는 병이었다.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환자에게 수술을 권했다.
“기생충이 뇌를 침범했어요. 하지만 수술을 받으면 완치될 수 있습니다.”
“아이고, 수술을 받으려면 돈이 허벌나게 들 텐데요. 나는 수술 안 합니다.”
“무슨 말씀이에요. 수술 안 하면 죽습니다.”
“아따, 나 혼자 죽는 게 낫지. 나 하나 살려고 식구들 다 죽일 순 없소.”
“빨리 완치되서 식구들을 부양하셔야죠.”
같은 내용의 대화가 한참 반복되었지만 이야기는 한 치도 진전이 없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환자가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찌 도울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끝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당시 서울대학교병원에는 ‘관비’라는 제도가 있었다.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희귀한 질병을 가진 환자가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병원에서 치료비를 면제해주고 치료과정을 교육에 활용하는 제도였다. 사실 이 환자는 교육적인 가치가 높은 희소병은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이야기를 잘하면 될 것 같아서 과장님을 설득하고 결국 부원장님 결재까지 얻었다. 너무 기뻐서 환자에게 그 소식을 알렸고 수술 날짜를 곧 잡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회진시간, 환자는 “다 죽게 된 놈을 치료도 안 해준다”면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윗분으로부터 “환자가 왜 저렇게 난리를 피우게 하느냐”는 핀잔까지 들으니 정말 속이 제대로 상했다. 나로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드디어 수술 일정을 잡아 수술에 들어갔다. 마취를 하고 난 후 환자를 비스듬히 앉히고 후두부를 절개했다. 나는 제2조수로 수술에 참여했는데 경막을 열고 소뇌를 양쪽으로 젖히면서 제4뇌실을 찾아 무사히 기생충을 제거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고 환자는 잘 회복되어 퇴원을 앞두게 되었다. 병실에서 환자를 볼 때마다 잘 나아준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수술 전에 나를 골탕 먹인 것을 생각하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환자는 수술 후에는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싱글싱글 웃기만 할 뿐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인사도 한마디 없었다.
“이제 퇴원하셔도 됩니다.”
“진짜로 집에 가도 됩니까? 이제 아무 탈 없는 거지요?”
“글쎄, 완쾌되었다니까요.”
“무슨 문제가 또 생기면 책임질 거지요?”
“앞으로는 돼지고기를 날로 먹지 마세요.”
“어이, 젊은 양반. 잠깐 나 좀 보면 좋겠소.”
환자는 6인용 병실 맞은편에 있는 환자용 목욕탕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부스럭거리며 신문지에 싼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당직실에 돌아와서 펴보니 ‘한산도’라는 담배 두 갑이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 혼자 한참을 웃었다.
그로부터 15년쯤 흐른 어느 날, 외래 진료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다음 환자 들어오시지요.”
“혹시 나 모르겠소?”
“아, 전라도에서 온……?”
“맞소, 허허허. 수술받은 지 오래 되었고 나이도 있고 해서 진찰 좀 받아보면 어떨까 해서 왔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별일 없었지요?”
“아따, 이제는 그래도 살 만합니다. MRI 한번 찍어보면 좋겠어서 왔소.”
“그러시지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선생, 여기 앉아 있는 것을 보니 겁나게 출세했소.”
15년 전 생명이 오락가락하던 중에도 자기 때문에 야단맞는 비쩍 마른 전공의가 불쌍해 보여서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졸지에 ‘겁나게 출세한’(?) 인물이 된 나는 15년 만에 재회한 그 환자 덕분에 ‘한산도’ 담배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한참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