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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고려시대
· ISBN : 9788933707975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21-11-25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서론: 고려중기 정치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 고려사회의 변화와 고려중기 / 2. 정치사 연구의 방향과 논점
^^제1부 11세기 후반 사회 변화의 감지와 정치 동향
제1장 전성기의 정치: 문벌의 강화와 문종의 리더십
1. 문벌의 강화와 사士‧서庶의 구분 / 2. 인사문제를 둘러싼 신분·계층 관련 논의 / 3. 사회 변화에 대응한 관료제도 정비와 왕의 위상 강화 / 4. 훈공勳功과 은사恩, 그리고 목친睦親의 논리
제2장 다원적 국제정세와 외교 다변화 모색
1. 다원적 국제정세와 거란에 대한 사대외교 / 2. 왕이 주도한 외교 다변화 정책
^^제2부 12세기 초 개혁의 모색^^
제1장 부국강병을 향한 신법新法개혁: 숙종~예종 초의 개혁정책과 여진 정벌
1. 11세기 말의 정치적 위기와 숙종의 즉위 / 2. 공리주의적功利主義的 신법개혁의 추진과 여진 정벌 / 3. 개혁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제2장 문예군주·구세군주를 지향한 정치: 예종대 한안인파의 대두와 교단도교 수용
1. 여진 정벌 후유증의 수습과 정책 전환 / 2. 도가사상의 정치론: ‘은일隱逸’과 ‘이술理術’ / 3. 한안인韓安仁파의 정치활동과 그 성격
^^제3부 12세기 중반 정치 갈등과 위기^^
제1장 외척세력의 대두: 친위와 반역의 사이에 선 이자겸
1. 문벌의 인적 네트워크와 외척 / 2. 외척 우대와 집권의 명분 / 3. 이자겸의 정치활동과 독점적 권력 추구
제2장 금의 흥기와 국제관계의 재편
1. 금의 흥기에 따른 국제정세 변화 / 2. 대금 강경론과 온건론
제3장 유신정국의 갈등과 서경 반란: 묘청파의 종교‧풍수도참적 혁신책과 김부식파의 유교정치론
1. 이자겸의 난 직후의 정국과 수습방안 / 2. 묘청파의 혁신책: 운명과 법술法術, 그리고 공업功業 / 3. 김부식파의 유교정치론: 천견天譴과 수덕修德·인정仁政
제4장 파국으로 치달은 정치: 의종대의 정치 파행과 무신정변
1. 왕의 측근세력 강화와 정치적 갈등 / 2. 국정 인식과 정책의 한계 / 3. 무신정변의 원인과 성격
^^제4부 무신집권, 불안한 왕정의 한 세기^^
제1장 정치 불안의 심화: 무신집권 초기 무신들의 권력 다툼과 왕정의 위기
1. 명종대 정치의 양상과 추이 / 2. 정치 현안에 대한 대응과 한계
제2장 불안한 안정: 최씨 일가의 장기 집권
1. 보정輔政과 그 명분 / 2. 보정의 제도적 장치와 권력기반 / 3. 은사恩賜와 연회宴會의 정치성
제3장 무신정권 보위 중심의 외교와 국방
1. 국왕 폐립을 인정받기 위한 책봉외교 / 2. 외침에 대한 무신정권의 대응
^^결론: 고려중기 정치사의 특징과 연구 전망^^
1. 국가적 위기의식의 대두와 거듭된 정치 변란 / 2. 정치세력 형성의 특징과 개혁의 모색 / 3. 다원적 국제관계의 변화와 대응 양태 / 4. 연구의 진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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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상식적으로 예상하기에는, 인사 문제에서 귀천의 구분을 중시하여 세계를 살피고 한품제․한직제를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주장은 문벌 출신들이 제기하고, 세계에 구애되지 말고 개인적 능력을 중시하자는 주장은 비문벌 출신이나 신진관료들이 제기하였을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전자는 당시 고위관료들 가운데 최충, 왕총지, 이자연, 최석 등이 제기하였으며, 후자는 김원충, 김정준, 김원정, 김현, 문정 등이 제기하였다. 그들의 출신기반을 따져보면 입장 차이가 문벌 출신 여부와 그다지 관련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정치세력의 분열로 이어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을 보면 문벌을 중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시 사회를 과연 체제화된 문벌귀족사회로까지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양측적 친속관계와 계급내혼을 기반으로 한 당대의 문벌 네트워크는, 비록 특정 족당세력이나 ‘가문’으로서 결속하지 않더라도, 최고지배층 사이의 연결망으로서 기득권을 보호하고 상호 비호하면서 문벌사회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기능을 하였다. 이자연의 가문은 자손이 번창하여 많은 고위 관료들을 배출하였고 다른 고위관료들과 본족, 외족, 인족 등으로 연결되었다. 그 결과 문벌 간 인적 네트워크에 폭넓게 연결되었고, 여러 대에 걸쳐 후비들을 배출하여 왕실과 문벌 간의 인적 네트워크를 접속하는 중심 구실을 하였다. 왕의 입장에서 보면 외척가문을 소수로 제한하면서도 문벌 사이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보위력을 높이려고 한 결과가 이자연 가문 출신의 후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이 내치를 우선시한 인물들은 대외관계에서 무력 대결을 피하고 민생 안정을 통하여 국내적 번영과 평화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권력관계에서 덕을 매개로 하여 군-신-민의 상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과 통하여, 대외경략론자들이 왕권 중심의 논리를 가졌던 것과는 달리 사족 중심의 논리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