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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근대철학 > 칸트
· ISBN : 9788935679119
· 쪽수 : 576쪽
· 출판일 : 2026-04-30
책 소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히 생각될 가치가 있고 가장 크고 특유하고 활동적이고
많은 성과를 남긴 우리 시대의 사상가에 대한 철학사의 한 장면 속
철학적 이성의 시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칸트의 편지 묶음을 공개적으로
편찬하는 것이 중요하고 흥미 있는 기여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으로…”
_고틀로프 예쉐, 『작고한 임마누엘 칸트 교수의 서신들로의 초대』
“이 편지는 인쇄하려고 작성한 것이 아닙니다.”
_임마누엘 칸트, 1789년 5월 26일, 헤르츠에게 보낸 편지
“저는 결코 제 편지를 대중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편지들을 가지고 계신다면 꼭 버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8세기 독일에서 편지는 단순한 연락 수단을 넘어 일종의 공적 매체였다. 학문은 편지의 형식으로 유통되었고, 사유는 편지 교환 속에서 다듬어졌다. 레싱과 리히텐베르크는 예술을, 오일러와 람베르트는 자연과학을 편지 형식으로 전개해가며 독일의 지성사를 써 내려갔다. 칸트 역시 편지로 동시대인들과 학문적으로 교류했지만, 자신의 편지가 공개되는 것을 여러 차례 분명하게 거부했다. 그럼에도 칸트 사후 곧바로 그의 편지를 수집해 출간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후 20세기에는 프로이센 왕립학술원의 『칸트전집』 출간과 때를 같이하여 방대한 서한집이 정리되기에 이른다.
■“형님! 이번에는 늦장 부리면 안 됩니다”
막냇동생 요한 하인리히 칸트가 보낸 편지 속 이 한마디가 보여주듯, 『서한집』이 비추는 칸트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르다. 제때 답장을 받지 못해 서운하다는 동생의 불평부터 칸트라는 성을 물려준 조부가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이야기, 부사서직과 교수직을 얻기 위해 왕과 총장, 원로원에 보낸 간절한 청원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칸트 스스로 공개를 바라지 않은 기록을 통해, 쾨니히스베르크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시계로 불렸다는 엄격한 철학자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완성되기 전의 칸트 비판철학
편지들은 사적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칸트의 비판철학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이 곳곳에 스며 있다. 미완성된 체계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고민이 나타나며, 선험철학에 대한 칸트의 확신이 말년까지 일관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을 비롯한 저서의 출간을 주변 사람들에게 예고하고 그 진척을 설명하는 대목, 그리고 모제스 멘델스존, 마르쿠스 헤르츠, 살로몬 마이몬, 카를 레온하르트 라인홀트,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등과 주고받은 서신은 18세기 계몽주의 지성인들의 대화망과 역동적인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 초역으로 만나는 칸트의 편지들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전집 14 『서한집』은 칸트가 남긴 900편 이상의 편지 가운데 핵심만 가려 뽑은 선집이다. 한국칸트학회와 서양근대철학회 회장을 지낸 맹주만 교수가 펠릭스마이너판 『서한집』(Briefwechsel)에 정리된 484편 중에서 칸트의 삶과 사유를 가장 밀도 있게 드러내는 153편을 엄선해 김형주 교수와 함께 번역했다. 방대한 서한집의 정수를 담은 이 책은 칸트의 사상적 토대와 인간적 실체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이 될 것이다.
목차
『칸트전집』을 발간하면서
『칸트전집』 일러두기
1749년
1754년
1756년
1759년
1761년
1762년
1763년
1765년
1766년
1768년
1770년
1771년
1772년
1773년
1774년
1776년
1778년
1779년
1781년
1783년
1784년
1785년
1786년
1787년
1788년
1789년
1790년
1791년
1792년
1793년
1794년
1795년
1796년
1797년
1798년
1802년
편집자 해제
옮긴이의 글
편집자주/옮긴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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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형님! 답장을 받는 일이 정녕 불가능한 일인지요? 이제는 저도 겔러트가 그의 게으른 친구에게 하듯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편지가 그전에 발송한 편지와 마찬가지로 운이 좋게도 도착한다면, 제게 답신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늦장 부리면 안 됩니다. (1763년 3월 1일, 요한 하인리히 칸트에게서 받은 편지)
자애로우신 폐하. 호프라트 고라이스키가 지금까지 수행해온 현지 왕립도서관에 속한 부속도서관의 직을 사임했기에 저는 가장 낮은 자세로 왕께 이 직분을 공고해서 일반인들을 위한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뿐 아니라 이곳 대학에서 저의 불확실한 신분에 도움을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1765년 10월 24일, 빌헬름 프리드리히 2세 대제에게 보낸 편지)
지금 저는 이론적일 뿐 아니라 단지 그것이 지성적인 한에서 실천적 지식의 본성을 포함하는 『순수이성비판』을 발표하려는 단계에 있습니다. 그것의 첫째 부분에는 형이상학의 기원, 그것의 방법과 한계가 포함될 것입니다. 저는 우선 이 부분을 완성하고 차후에 도덕성의 순수한 원칙들에 관한 기술을 완성할 것입니다. (1772년 2월 21일, 마르쿠스 헤르츠에게 보낸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