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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광야에

다시 광야에

김관식 (지은이)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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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광야에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다시 광야에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6420062
· 쪽수 : 168쪽
· 출판일 : 1998-12-01

책 소개

호방한 성격, 희귀한 동양적 예지와 한시적 소양, 그리고 남다른 기행으로 50년대·60년대의 시단에 수많은 일화를 남겼던 김관식 시인의 모든 시작품을 수록하였다. 몸 전체를 한 자루 붓삼아 시를 쓰는 시인의 존재가 점점 그리워지는 이 시점에서 그의 시가 시사해주는 바는 크다 할 것이다.

목차

제1부
무제
풍요조(諷謠調)
호피(虎皮) 위에서
정(情)·단장(斷章)
거산호(居山好)·Ⅰ
거산호(居山好)·Ⅱ
병상록
폐가에 부쳐
죽림부(竹林賦)
한강수 타령
지치장( 痔莊)에게
무검(撫劍)의 서(書)
가난 예찬
자다가 일어나 보니 배추밭에서
수전노에게
나의 스승 육당(六堂)
장생부(長 賦)
의고풍(擬古風)
뱀을 잡는 여인
이 가을에

제2부
산길
녹야원(鹿野苑)에서
의란조( 蘭操)
자도(紫桃) 소묘
장자(莊子)와 나비
옥루(屋漏)의 서(書)
효자전
몽유도원도
삭풍에 기대어 말이 울면
연(蓮)
계곡에서
홍련이에게
융동(隆冬)의 서(書)
양생수(養生修)
이제 천하는
자상부(紫桑賦)
산중재상(山中宰相)
귀로
제3부
문복( 腹)의 서(書)
유곤(游鯤)의 서(書)
옹손지(饔 志)
아양곡(峨洋曲)
고매(古梅)
나의 임종은
호박(琥珀)
송골매
신라 소묘
세례(洗禮) 요한의 비둘기떼들
매약옹(賣藥翁)
목양송(牧羊頌)
달에 관한 이야기
제4부
창세기초(創世記 )
양생록(養生錄)
동양의 산맥
영대(靈臺)에 새겨 놓은 시
소부허유(巢父許由) 전(傳)
자하문 밖
무(無)에 대하여
지구 최후의 날에

해일서장(海溢序章)
소상야우(瀟湘夜雨)
통곡
황토현에서
풀이슬같이
석상(石像)의 노래
추수감사절의 아가(雅歌)
사행시초(四行詩抄)
궁아(宮娥)의 노래
서호(西湖) 옛 풍류
산염불(山念佛)
춘잠(春蠶)에게
다시 광야에
고노(古老)의 서정( 情)
귀양가는 길
광란의 해후(邂逅)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
초야의 기도
무제
비원(悲願)

□ 증보
임원생활지(林園生活志)
모정
사계절
승가사(僧伽寺)에서
여정집(麗情集)

□ 편집후기/염무웅

저자소개

김관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4년 지금의 논산 지역인 충남 연무읍 소룡리에서 태어났다. 지역 문묘를 지키는 향교 제관이자 당대 윤리와 문화 교육을 담당하는 전교(典校)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시인은 부친에게 한문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학문에 눈을 뜨게 된다. 자라면서 주변에서 신동으로 불리던 김관식은 각지 선생들을 찾아 본격적으로 한학과 유학(儒學)을 공부하는데, 특히 민족의 ‘얼’을 강조한 정인보(鄭寅普, 1893∼1950)에게 배우면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꾸준히 성리학을 연구하던 김관식은 해방 이후에는 대구에 거주하면서 오세창(吳世昌)에게 서(書)를, 최남선에게 동양학을 배운다. 호남 명문이었던 강경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김영랑에게 현대시를 배우면서 시 창작에 뜻을 세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52년에 첫 시집 ≪낙화집≫을 출간했다. 등단도 하기 전에 시집을 발간한 셈인데, 스승인 김영랑 시인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1960년 4·19 직후 서울 용산 갑구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거물 정치인이었던 장면(張勉)을 상대로 맞아 선거를 치렀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고향 재산을 모두 털어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예상대로 낙선했다. 이후에는 지금의 홍은동 부근 산비탈 국유지를 무단 점거해 ‘육모정’을 짓고 살면서 가난한 문인들을 불러와 살게 하고, 고아, 부랑자들을 모아 문학을 가르쳤다. 가난과 육체적 고통이라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1970년에 서른여섯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고향 유택과 모교인 강경상고 교정, 대전 보문산 공원에 그를 기리는 시비(詩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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