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물 한모금
그림자
섬
문밖에서
틈새
피아간(彼我間)
크레바스
망태할아버지 저기 오시네
늑대가 나타났다

해설 / 황도경
작가의 말

다 끝났다... 벌겋게 달궈진 채, 이따금 부스러기 불꽃을 빛내며 그의 등판을 노리는 낙인. 아내에게 술장사를 시킨 남자, 그 결과 오쟁이진 사내, 이혼당한 남편. 그리고 그의 귀에 탁한 입김을 불어넣으며 그를 도발하는 속삭임. 넌 아무것도 아냐.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더는 쓸 말이 없었다. 살아야 할 이유도 죽어야 할 이유도 구구하지 않았다. 그 간명함이 마음에 들었다. 살고 죽는 게 한끗 차이였구나. 대단한 잠언처럼, 그의 마음속에 떠오른 그 말을 곱씹으며 종이를 차곡차곡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일어섰다. 늘 그를 질질 끌고 가던 생, 그 고삐를 잡아챈 듯한 득의마저 느꼈다. - '틈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