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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8678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21-12-30
책 소개
목차
호텔 해운대
우리들의 낙원
다시 만난 세계
후원명세서
지진주의보
도서관 적응기
바람벽
해설 | 박혜진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인부산 하고 싶다, 인부산.”
민우가 부산시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보고 와서 말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살고 있는 민우는 앞으로도 부산에서 쭉 살고 싶어 했다. ‘인서울’ ‘인수도권’을 외치며 다른 지역으로 취업을 꿈꾸는 이도 많았지만 지방에 사는 이십대가 모두 똑같은 희망사항을 지닌 건 아니었다. 민우에게 ‘인서울’은 ‘아웃부산’의 다른 말이었다. 부산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살아온 터전에서 추방됨을 뜻했다.(「호텔 해운대」)
가만히 있지. 꼭 그렇게 나대는 사람들이 있어요.
콘돔은 필요한 애들이 알아서 사겠지, 그걸 꼭 길에서 나눠줄 필요가 있나.
신여성들이 어디서 서울 애들 하는 걸 보고 따라 했는가배.
이야기를 들은 다른 동기들이 말을 덧붙였다. 적당한 비속어를 섞어가면서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렸다.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언니의 마음과 의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언니에 대해서 함부로 떠드는 것도 듣기 싫었다. 언니를 욕하는 이들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그러다 정문 앞에서 나를 부르던 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언니는 나를 왜 불렀을까. 나를 부르기는 했던 걸까. 언니를 욕하는 동기들과 언니를 외면한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화를 낼 자격이 있는 걸까. 나는 필통만 만지작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시 만난 세계」)
그중 가장 중요한 율법은 절대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게 없음을, 무엇이 결핍되었는지를 공공연하게 떠벌리는 일이었다. 결핍은 벗기고 벗겨도 계속해서 껍질이 나타나는 양파와 같았다. 한겹만 벗기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또다시 얇은 껍질이 나타났다. 두 눈이 새빨갛게 되도록 나의 결핍을 벗기고 나면, 그 자리엔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양파의 씨앗, 열매 따위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후원명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