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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9552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4-06-21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깡통
숲으로
가족 버스
합석
상봉
조용한 생활
이웃
섬으로 가는 엉뚱한 여행
여기는 괜찮아요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것들이 하나도 썩지 않았더구나.”
네르귀는 할아버지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짐승 뼈도 썩는데, 고비에서는 돌도 부스러지는데 아라즈는 썩지를 않아. 내가 이 아라즈라는 말을 기억에서 되찾는 데 칠십년이 걸렸단다. 네가 이걸 멀리 가서 버려주면 좋겠다.”
네르귀는 깡통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고, 그 단어를 만난 순간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
“어디에다가 버리라는 거예요?”
네르귀는 자신이 가본 지평선들을 떠올렸다.
“멀리. 아주 멀리.”
“달란자드가드요?”
“거기는 이걸 버릴 데가 없다. 더 큰 데로 가야지.”
“울란바토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르귀는 깜짝 놀랐다. 울란바토르는 북쪽으로 500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데였다. 할아버지는 그곳에 다녀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깡통」 부분
수아가 내일은 올라가봐야겠다는 뜻을 비친 뒤로 금이는 부산하다. 탈상도 했고 이틀을 묵었으므로 바쁜 사람을 더 붙잡지는 않았다. 금이는 김치를 담가 보내겠다고 열무를 솎아다가 절이고 도정기에 쌀을 찧는다. 장이며 참기름, 마늘장아찌, 말린 나물 등속을 눈에 띄는 대로 병이며 찬통에 담는다. 아침나절 내내 그러느라 금이는 손바닥만 한 마당을 휘젓고 다닌다. 만류한다고 노인이 그만둘 일도 아니고, 또 그래야 당자도 섭섭지 않을 것 같아 수아는 모른 체하다가 농장에 석류즙을 주문할 때는 한 소리 하지 않을 수 없다.
―「숲으로」 부분
“상제님.”
장례사가 불러 세운다.
“추모예배는 드리기로 결정하셨어요?”
나는 엉거주춤 서서 불편한 마음으로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장례지도에 서툴고 융통성도 없다. 큰올케는 첫날부터 엄마의 장례를 교회장으로 치렀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엄마가 요양원에서 지내는 동안 세례를 받았다는 거였다. 지난 초겨울, 아버지 제사에 다녀온 언니를 통해 들었던 얘기였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비석에 십자가를 새겨 성도(聖徒)로 모시자는 주장에는 모두들 처음 듣는 소리처럼 뜨악해했다.
“치매 걸린 노인이 뭔 세례를 받았다고 올케는 자꾸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네.”
언니가 퉁명스레 말했다. 나는 언니가 큰올케를 흉보고 못마땅해하는 소리도 지겨워하는 입장이었다. 큰올케는 지나친 신앙생활을 빼고는 무난한 맏며느리였다.
―「가족 버스」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