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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믿음의 종교개혁가인가 광포한 선동가인가?)

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지은이), 이미선 (옮긴이)
홍성사
21,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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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믿음의 종교개혁가인가 광포한 선동가인가?)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36509439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12-10-24

책 소개

루터의 개혁사상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만든 것이기도 하다. 구텐베르크를 통해 책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종교개혁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루터의 삶을 단순히 보여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풍부한 시각자료를 통해 충실히 다루었다.

목차

성서 박사, 교황의 적(한 인간과 그의 업적)
저는 농부의 아들입니다(유년기와 청소년기(1483-1500))
매우 훌륭한 나라, 모든 것을 충분히 가졌다(1500년경의 독일)
기꺼이 수도사가 된 것은 아닙니다(대학과 수도원(1501-1517))
면죄 설교자의 뻔뻔스러운 말에 맞서다(95개 논제와 그 결과(1517-1520))
저는 여기 서 있고, 달리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보름스와 바르트부르크(1521-1522))
제가 농부들을 모두 때려죽였습니다(개혁가와 혁명가(1522-1525))
그리스도인 누구나 알아둬야 하는 것(건립과 경계 설정(1525-1529))
인간은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비텐베르크와 세상(1530-1540))
받아 적는 것이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네!(루터의 손님이 되어)
설교자는 입 속에 이를 갖고 있어야 한다……(설교자이자 교수)
글을 쓸 때면 글이 거침없이 흘러나옵니다(시사평론가이자 정책입안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만 한다(정치가이자 교육자)
구더기들에게 뚱보 박사를 먹이로 내줄 셈이오……(노년과 죽음(1540-1546))
사람들이 제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를……(루터의 어제와 오늘)

부록

저자소개

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지은이)    정보 더보기
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는 1952년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 마울브론에서 태어났다. 본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 화학,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튀빙겐 대학에서 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실천신학(종교교육학)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했다. 이어 남미 칠레 공화국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목사, 교사,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호헨하임 대학에서 신학 및 종교교육학 강사로 재직 중이다. 신학, 교육학, 종교교육학 그리고 역사학 분야에서 많은 저서를 냈으며 여러 종교개혁가들의 전기를 펴냈다.≪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지식을만드는지식)가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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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옮긴이)    정보 더보기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독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수많은 운명의 집』, 『루친데』, 『그립스홀름 성』, 『루터: 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 『소송』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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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논제들은 라틴어로 쓰였다. 루터는 학자들과 고위 성직자들 사이에 토론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일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처음에 기뻐했던 것 이상이었다. 불꽃 없이 은근히 타오르던 교회에 대한 비판이 폭발했다. 논제들은 곧바로 독일어로 번역되어 14일 안에 전 독일에 퍼졌다.“마치 천사가 심부름꾼인 것 같았다.”논제들은 당시까지 무명의 루터를 단숨에 유명인사로 만들었다.‘하늘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으며 세상을 불길 속에 놓는 것’같았다. 그는 자신의 용기에 놀랐다.“그 노래는 내 목소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높아지려 했다.”잘 알다시피, 논제들은 면죄에 반대하여 작성된 것이 아니었다. 루터의 군주도 평생 면죄의 효력이 있는 성유물을 보관했다. 루터의 논제는 면죄의 오용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로마가 1521년 1월 3일 최종적인 파문칙서를 발행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파문경고칙서>서 교황으로부터‘거친 멧돼지’,‘짐승’이라고 불린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로마교회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그는 이단자로 여겨졌다. 1520년에“그 사람은 내게서 잘근잘근 씹을 고슴도치 한 마리를 발견했다.” 루터는 이렇게 반박하고 생애 내내 이 높으신 분에게 뻣뻣하게 굴었다. 루터의 글 중 다수는 루터의 주요 적대자인 교황과 교황의 추종자인‘로마 추종자들’혹은‘교황 신봉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로마교회는 그에게‘악마의 창녀’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루터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정곡을 찔렀다.


생애 후기의 어마어마한 작업 성과는 동료들과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여기서 제1순위에는 터보다 14년 연하의 필리프 멜란히톤이 있다. 그는 27년간이나 루터의 업적을 보충하고 첨가했다. 두 사람의 긴밀한 관계에 긴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멜란히톤은 루터에게 “복음을 배웠다”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루터를 존중했다. 그러나 멜란히톤은 또한 루터의 특이한 성품에 시달렸고, 루터에게 ‘광포한 헤라클레스’ 혹은 ‘선동 정치가’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으며, 이렇게 한탄한 적도 있다.“루터가 한 번만이라도 입을 좀 다물었으면!”반면 루터는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고 타협을 위해 애쓰는 멜란히톤의 태도에 전혀 감동받지 않았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불화는 없었다. 독일과 전 세계, 적어도 중부와 북부 유럽의 종교개혁이라는 그들의 공동 관심사가 컸기 때문이다. 훗날 두 사람은 당연히 비텐베르크 성 부속교회에 나란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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