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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 열전

재상 열전

(조선을 이끈 사람들)

이성무 (지은이)
청아출판사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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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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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재상 열전 (조선을 이끈 사람들)
· 분류 : 국내도서 > 자기계발 > 리더십 > 리더십
· ISBN : 9788936804503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10-07-25

책 소개

성리학적 유교 질서 사회였던 조선에서 재상이라 함은 문신, 즉 공자 왈 맹자 왈만 주워 삼키는 고루한 서생이라고 흔히 생각되어왔다. 이 책은 그런 통념을 뒤엎으며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얼굴을 바꾸어 가며 시대에 대응하고, 시대를 만들어 간 리더로서의 '재상'을 재조명한다.

목차

서문-오늘날 필요한 진정한 리더십을 만난다

1장 행정의 달인이 되다
- 하륜, 태종을 도와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다
- 황희, 세종과 함께 태평성대를 열다
- 신숙주, 변절의 오명을 딛고 문화와 외교의 꽃을 피우다
- 이준경, 훈구와 사림의 대립 속에서 과도기 정치를 이끌다
- 오윤겸, 뛰어난 인품과 능력으로 혼란의 시기를 헤쳐 나가다
- 김육, 대동법으로 백성을 위한 경제 정책을 펼치다
- 채제공,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탕평을 실천하다

2장 국란 속에서 빛을 발하다
- 유성룡, 합리적 리더십으로 나라를 구하다
- 이원익, 격동의 시대를 살며 소신의 정치를 펼치다
- 이산해, 붕당의 영수로 조선 당쟁사의 중심에 서다
- 이덕형, 조선 최고의 외교관으로 나라를 구하다
- 이항복, 지혜와 기개로 국란을 극복하다
- 최명길, 과감한 현실론으로 나라를 살리다
- 김상헌, 강직한 의기로 나라의 절개를 지키다
- 이경석, 실리와 충정으로 국란을 타개하다
- 김홍집, 조선의 마지막 구국 혼을 불태우다

3장 권력의 중심에 서다
- 정도전,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하다
- 김종서, 호랑이와 같은 기개로 세상을 호령하다
- 한명회, 정난공신에서 훈척대신까지 최고의 권력을 누리다
- 윤원형, 외척으로 권력을 독점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다
- 송시열, 정치사상계의 거장으로 유림 위에 군림하다
- 홍봉한, 영조의 비호 아래 노론 척신 정권을 지키다
- 김조순, 조선 후기 60년 세도정치의 씨를 뿌리다

4장 시대의 정신을 이끌다
- 이언적, 성리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다
- 이황, 조선 성리학의 거두로 추앙받다
- 이이,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다
- 박세채, 소론의 영수로 황극탕평론을 펼치다
- 허목, 남인 실학파의 초석을 쌓다
- 윤휴, 성리학계의 이단아, 학문적 자유를 꿈꾸다
- 윤증, 서인 소장파 소론을 이끌다

저자소개

이성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학과를 거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 연구교수와 독일 튀빙겐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연세대학교 용재석좌교수를 지냈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남영학연구원장,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한국학 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과거제도』 『조선 초기 양반연구』 『조선의 사회와 사상』 『조선양반사회연구』 『한국역사의 이해(1~7)』 『조선왕조사』 『조선시대 당쟁사』 『조선을 만든 사람들』 『명장열전』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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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정도전은 1383년 당시 동북면도지휘사로 있던 이성계를 만나기 위해 함주 막사로 찾아갔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군대를 눈여겨보았다. 세상을 바꾸는 데는 군사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훌륭합니다. 이런 군대라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고, 두 사람은 이로써 의미심장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정도전은 술이 취하면 이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 고조가 자방(한 고조 유방의 책사)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방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책사로서 이성계에게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성계의 힘을 빌려 개국한 것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태조 이성계가 무장의 강력한 힘과 능력으로 새로운 왕조를 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면, 정도전은 지략으로 이성계의 마음을 움직여 그 조건을 발현시킨 인물이다.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정도전은 태조의 큰 신임을 얻었고,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태조로 즉위한 지 11일 만에 《편민사목》을 지어 올렸다. 이를 바탕으로 정도전은 새 왕조에 걸림돌이 되는 이색, 이종학, 이확, 이숭인 등을 귀양 보내거나 처형했다. 태조도 꺼려할 정도로 형벌은 무자비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새 국가 창건에 이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정도전은 그렇게 조선의 기틀을 세우는 데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정도전의 과감한 인사 조치와 개혁정책은 기존 세력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정도전은 농사에 중심을 두어 사전을 혁파하고 공전을 늘렸다. 그런데 이는 귀족들의 경제 기반을 빼앗아 국가에 귀속시킨 것이어서 그들의 불만을 키웠다. 그러나 정도전은 태조의 신임을 등에 업고 강한 추진력으로 새 왕조의 기틀을 흔들림 없이 갖추어 나갔다. 또한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궁궐의 이름과 경내로 들어오는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을 지은 것도 정도전이었다. 한양은 장소 선정부터 설계와 최종 이름을 짓는 일까지 정도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조선이 이성계의 나라이며 정도전의 나라였듯, 한양은 태조의 도읍지이며 정도전의 도읍지였다.
- 정도전,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하다


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주자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왕도정치를 실천하는 이상 국가였다. 고려에서는 수구 세력 때문에 정치 이념을 실천할 기회가 없었던 정도전은 이성계라는 걸출한 인물을 만나 새로운 왕조,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마음껏 펼칠 힘과 기회를 얻었다.
정도전은 개혁을 위해 《주례》를 사회개혁 모델로 정했다. 양민을 늘려 자작농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지주제를 부정하고 공전제를 부활시켰다. 이는 고려 시대의 병폐가 된 문벌독점체제를 지양하기 위함이었다. 즉 혈통보다 능력을 중시하고, 선비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중앙집권적 양반관료체제를 지향하면서 무엇보다 재상의 역할을 중시했다. 그는 왕은 국가의 상징이고 구심체이지만, 국정은 재상이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국가 조직을 재상 중심으로 편성하여 재상이 정치를 주도하는 정치체제라면 왕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태조가 조선 건국에 공이 큰 이방원을 배제하고 후비 신덕왕후 강씨의 둘째 아들 방석芳碩을 세자로 세웠을 때 정도전이 이를 반대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누가 왕이 되든 재상 중심의 정치체제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 정도전,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하다


이렇게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한명회는 반정의 명분을 확신시키며 수양대군의 역심을 자극했다.
“국가에 어린 임금이 있으면 반드시 옳지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고, 옳지 못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여러 사특한 무리가 그림자처럼 붙어서 불우의 화가 항상 이로 말미암아 일어났습니다. 그때 충의로운 신하가 있어서 일어나 반정을 한 뒤에야 그 어려움이 곧 형통해지니, 부운이 서로 이어지는 것은 천도의 자연이라고 하겠습니다.”
한명회는 이때부터 수양대군의 수족이 되어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 등의 종적을 염탐하거나 거사에 참여할 무사들을 모으는 등 주로 행동대장의 역할을 맡아서 했다.
1453년(단종 1) 10월, 마침내 계유정난이 일어났다. 수양대군은 수하 몇 명을 데리고 김종서를 찾아가 철퇴로 내리쳐 목숨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길로 즉시 궁으로 돌아와 단종을 위협해 대신들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이때 한명회는 무사들을 이끌고 궁문을 지키고 서서 궁으로 들어서는 대신들을 살해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한명회의 손에는 ‘살생부’가 들려 있었다고 한다. 한낱 궁직이었던 그가 하루아침에 조정 대신들의 목숨을 손 안에 쥐고 흔드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맡았던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정권을 장악한 후 정난공신에 봉해졌다. 별 볼일 없던 한량이던 한 사내가 수양대군이라는 운명을 만나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 한명회, 정난공신에서 훈척대신까지 최고의 권력을 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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