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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7405044
· 쪽수 : 119쪽
· 출판일 : 2007-04-20
목차
자서
청담
복자수도원
강변에 이르렀을 때
저녁을 위하여
눈
곰
숲을 통과하다
여행
시간은 저 혼자서도 살 만하고
산
지용의 노래
봄날
실내를 위하여
일화
생각이여 내려오라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나야
누설
그녀의 거리
늙은 아버지인 밤을 위한 시
우체통
겨울, 한 귀퉁이
청소를 엿보다
긴 밤에는
하늘나라
최치원
9월
봄
춘투
불탄 집
사랑의 참 좋은 말씀
겨울, 일몰 시간 1
겨울, 일몰 시간 2
겨울, 일몰 시간 3
겨울, 일몰 시간 4
끄트머리에는 언제나
무늬 남다
납가새 꽃
그렇게 사탕을 먹으며
수첩
봄밤
일요일
서랭이절
무령왕릉기
무우수 그늘 아래
쉬는 날
눈 내리는 겨울 한낮
무늬들은 빈집에서
소록도와 소년
마법 이야기
물의 사원
작품 해설 - 바다 속 백단향 나무같이 / 이남호
저자소개
책속에서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나무에 묶여 있었다. 숲은 검고 짐승의 울음 뜨거웠다. 마을은 불빛 한 점 내비치지 않았다. 어서 빠져나가야 한다. 몸을 뒤틀며 나무를 밀어 댔지만, 세상 모르고 잠들었던 새 떨어져 내려 어쩔 줄 몰라 퍼드득인다. 발등에 깃털이 떨어진다. 오, 놀라워라. 보드랍고 따뜻해. 가여워라. 내가 그랬구나. 어서 다시 잠들거라. 착한 아가. 나는 나를 나무에 묶어 놓은 자가 누구인지 생각지 않으련다. 작은 새 놀란 숨소리 가라앉는 것 지키며 나도 그만 잠들고 싶구나.
누구였을까. 낮고도 느린 목소리. 은은한 향내에 싸여. 고요하게 사라지는 흰 옷자락. 부드러운 노래 남기는. 누구였을가. 이 한밤중에.
새는 잠들었구나. 나는 방금 어디에서 놓여 난 듯하다. 어디를 갔다 온 것일까. 한기까지 더해 이렇게 묶여 있는데, 꿈을 꿨을까. 그 눈동자 맑은 샘물은. 샘물에 엎드려 막 한 모금 떠 마셨을 때, 그 이상한 전언. 용서. 아, 그럼. 내가 그 말을 선명히 기억해 내는 순간 나는 나무 기둥에서 천천히 풀려지고 있었다. 새들이 잠에서 깨며 깃을 치기 시작했다. 숲은 새벽빛을 깨닫고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얼굴 없던 분노여. 사자처럼 포효하던 분노여. 산맥을 넘어 질주하던 증오여. 세상에서 가장 큰 눈을 한 공포여. 강물도 목을 죄던 어둠이여. 허옇고 허옇다던 절망이여. 내 너에게로 가노라. 질기고도 억센 밧줄을 풀고. 발등에 깃털을 얹고 꽃을 들고. 돌아가거라. 부드러이 가라 앉거라. 풀밭을 눕히는 순결한 바람이 되어. 바람을 물들이는 하늘빛 오랜 영혼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