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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7417214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23-05-22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1부 작가
2부 업계인
3부 철학자
4부 스파이
감사의 말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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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 입장에서 출발점은 ‘업계인’이다. 업계인은 작가와 철학자와 스파이를 제외한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내가 업계인이다. 이런 말을 쓰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아무튼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실체적으로 나는 분명히 업계인이다.
‘스파이’는 업계인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은 내 존재의 나머지 부분을 말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는 보이지 않다가 업계인을 매개로 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예컨대 회사에서 내 줄 생각이 없는 책을 어떻게 은근슬쩍 끼워서 낼 수 없을까 궁리하는 것이 스파이다. 여기에서 스파이를 개인의 순진한 욕망처럼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스파이는 곧 교활해지고, 업계인이 순진함을 대신 담당하게 되는 역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들어가는 말」
우리는 안나가 사교계에서 겪는 온갖 모욕과 추방을 신이 주는 벌과 구별할 수 있을까? 다르다면 뭐가 달라야 할까? 신의 역사(役事)는 사실 어리석고 잔인한 인간들을 동원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제사의 본뜻은 ‘어떤 벌을 받는지 보라’가 될 것이고, 우리는 이야기의 압력이 미칠 듯이 상승한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신의 개입이 선언된 이야기에서 필연적이지 않거나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모든 미세한 행위들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고 결말로 날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유명한 첫 구절인데, 핵심은 그 닮음의 실체가 뭔지 작가가 안다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들은 닮았다. 신의 은총이라는 단일한 공통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없으면 제각각의 인간, 제각각의 불행만 남을 뿐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신의 은총.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첫 줄에 할 말을 다 써 놓고 시작했다!(문호는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다.)
─ 「무수한 불행과 하나의 행복 사이에서」
신참 때 어느 저자가 보내온 장황한 약력을 편집할 일이 있었다. ‘사실만 남길 것’이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어려운 주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대표의 빨간 줄이 쳐져 되돌아왔다.
“‘근간’ 같은 건 넣지 마라.”
“한 달 뒤에 나올 책이라고 하셔서요.”
대표가 반문했다. “아직 안 나온 책이면 아직 사실이 아니지 않나?”
핵심은 책의 저역자 소개가 자기표현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 내용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공간일 뿐이다. 백 퍼센트 보증된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저자가 자신을 공개할 마음이 없으면 신뢰성 보증은 출발도 할 수 없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직 책의 내용으로 승부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저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독자 입장에서는 저자 약력이 써 있는 방식을 보면 책 속에서 사실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 예감하게 되는 법이다.
─ 「저자 약력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