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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42872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22-05-20
책 소개
목차
모피방 7
사라지다 43
때아닌 꽃 79
달걀 113
수납의 기초 149
회전의자 183
벨롱 217
전망대 253
작가의 말 285
작품 해설
빛과 그림자의 세계_ 임정균(문학평론가) 290
저자소개
책속에서
집은 표백제를 듬뿍 넣고 밤새 삶은 듯 희기만 했다. 아내에게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비어 있을 줄은 몰랐다. 문조차 없어 전체가 트여 있었다. 베란다로 나가는 곳에도 문은 없었다. 밖을 내다보면 누가 등을 떠밀 것처럼 어질했다. 5층이라고 했는지 6층이라고 했는지 헛갈렸다. 어쩐지 자꾸 높아지는 것 같았다.
아내는 너를 밀치고 성큼성큼 나섰다. 그러더니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줄자로 크기를 쟀다. 세탁소에 왔을 때 “이제 이건 필요 없겠네요?” 하면서 들고 나온 줄자였다.
-「모피방」
“가족사진도 찍어 둬. 가족도 사라질지 몰라.”
선배 목소리는 터널 안에서 제멋대로 퍼졌다. 뒤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옆에서 튀어나왔다. 어느 순간 머리 위에서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너무 늦었어요.”
대답은 어둠에 파묻혔다. 터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게 시원찮아 얼마나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출구는 손에 잡힐 듯한데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선배를 따라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뒤에서 선배가 따라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울퉁불퉁한 벽과 뺨에 닿는 서늘함뿐이었다. 사라질 것을 얘기하는 선배 목소리마저 어딘가로 계속 흡수됐다. 그때마다 억지로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지다」
책에 따르면 가끔 찾는 공구는 맨 아래 칸에, 자주 쓰는 조리 도구는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놓아야 했다. 그래야 애써 정리해 놓은 물건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초보자라면 알아보기 쉽게 투명한 수납함이나 구멍이 뚫린 바구니를 이용하는 게 좋다고 덧붙여져 있었다. 이름표를 붙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끝내 수납이 안 되는 물건은 분명 필요 없는 것일 테니 과감히 버리라고 조언했다. 수납의 기초는 버리기에 있었다. 그다음 단락부터 1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는 물건은 미련 없이 내놓으라는 문장이 지나치다 싶은 정도로 자주 반복되었다. ‘버리는 건 실패한 과거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나은 미래를 위한 행동이다.’나 ‘들이는 것보다 포기가 삶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 준다.’는 문장에 이르렀을 땐 책 제목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1. -「수납의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