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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6373801
· 쪽수 : 220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풍경을 걷다
벨롱_전석순
크루즈_김경희
송당_SOOJA
귤목_이은선
가두리_윤이형
물마루_구병모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벨룽
벨롱은 무슨 뜻이에요? 벨롱은 여기 말로 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찰나의 순간이죠.
여자는 시선을 조금 먼 곳에 던졌다. 멀리 무언가 열심히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누군가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파도 소리 때문에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아이의 목소리를 골라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벨롱장은 그쯤일지도 몰랐다. 남자와 옥신각신하는 동안 이만큼이나 걸어온 건가 싶었지만 여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거기쯤에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가 꽃잎이 그려진 책갈피나 어디에 써먹을지 알 수 없는 구슬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여자는 아이가 물건을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일 것만 같았다. 어쩐지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게…… 아이에겐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크루즈
이런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간단히 ‘통증’이라고 뭉뚱그려 부른다. 하지만 해정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유령이다.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없는 것, 해괴하기 짝이 없는 통증이란 것이 수시로 해정의 몸 어딘가를 침범해왔다. 그토록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 것은 결혼 후 1년이 막 지나면서부터였다. 꼭 서른세 살 되던 생일날 아침, 퍼뜩 눈을 떴는데 유령처럼 괴이하고 현실감 없는 통증이 해정의 몸 어딘가를 훅 관통했다. 그 느낌은 지극히 생생하면서도 위험했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을 도무지 피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해괴한 통증은 수시로 해정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송당
지우의 하얀 승용차는 푸르스름하게 땅거미가 내릴 무렵 고개 하나를 넘었다. 마치 시각을 정확하게 그리 맞춘 듯 지우로 하여금 한순간 ‘펑’ 하고 모든 걸 잊게 만드는 장엄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우는 2차선 도로 옆에 차를 정차시켰다. 어차피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대로 운전대를 잡고 고개를 바깥으로 뻗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에 걸린 태양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듯 오렌지색 붉은빛을 회색 구름 위로 토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난데없이 불쑥불쑥 솟은 오름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우며 입체감을 더했다. 모노톤으로 색깔을 덧입은 오름들이 얼핏 봐도 여남은 개는 돼 보였다. 앞, 뒤, 좌, 우 오름들이 앞다투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우의 입에서는 저절로 “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우는 다시 미끄러지듯 차를 몰아 고요한 오름의
바다를 가로지른다.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듯 제주는 지우에게 선물을 건넨다. 지우는 제주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