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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7442896
· 쪽수 : 492쪽
책 소개
목차
1부 9
2부 193
3부 309
4부 407
리뷰
책속에서
“그날 가시나무 옆에서 나랑 이야기를 나눈, 우중충한 누더기 걸친 외지 여자 기억나요? 겉으로는 실성한 떠돌이처럼 보였지만 그이가 한 이야기가 조금 전 노파가 한 이야기와 아주 비슷했어요. 그이도 남편을 뱃사공이 데려가 버리고 물가에 혼자 남았대요. 그 만을 떠나 쓸쓸히 울면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산골짜기를 건너가는데, 앞쪽으로 한참 멀리, 뒤쪽으로도 한참 멀리까지 길이 훤히 보이는데 그 길에 자기처럼 우는 사람들이 죽 늘어서 있더라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막 들었을 때는 우리와 관계 없는 일이지 싶어서 크게 겁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이가 또 이러는 거예요, 이 땅에 망각의 안개라는 저주가 내렸다고. 우리도 많이 했던 이야기잖아요. 그러고는 나한테 묻는 거예요. ‘부인과 남편분은 함께했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서로의 사랑을 증명하시겠어요?’ 그 후로 계속 그 생각을 했어요. 때로는 생각해 보면 너무 두려워요.”
“그렇지만 부인, 이 안개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것이 정말 확실한가요? 어떤 일들은 기억에서 잊힌 채로 두는 것이 낫지 않은가요?”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희는 아니에요. 남편과 저는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요. 그런 기억을 빼앗긴다는 건 밤에 도둑이 들어 가장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과 다르지 않아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소. 오늘 우리가 색슨인들을 전사와 아기를 가리지 않고 무수히 학살하더라도, 이 땅 방방곡곡에 색슨인은 여전히 많소. 동쪽에서 건너와 해안에 배로 상륙하고, 매일같이 새 마을을 짓는단 말이오. 증오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소. 오늘 행해진 일로 말미암아 오히려 강철같이 다져질 뿐이오. 나는 이제 귀공의 삼촌에게 가서 내 눈으로 본 것을 보고하겠소. 하느님께서 이런 행위를 보시고 미소 지어 주시리라 정녕 믿는지, 그의 얼굴에서 확인해 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