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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73142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16-11-25
책 소개
목차
날짜 없음 7
작가의 말 262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폭설로 홍설(洪雪)이 진 후 도시는 더 이상 도시라 부를 수도 없게 되었다. 도로에서 차는 사라졌고, 수도는 얼어 버렸으며, 전기와 통신은 걸핏하면 두절되기 일쑤였다. 신경이 마비된 도시는 유능한 기능들을 하나씩 잃거나 빼앗겼다. 도시는 한때 재밌게 잘 갖고 놀다가 시시해졌다며 미련 없이 내다 버린 거대한 완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나와 다투면 얼마나 거칠고 못된 문장을 내뱉는 사람일까. 애정이 좀 더 깊어지면 어떤 단어를 문법에 넣어 표현하려 할까. 권태가 시작됐을 때는 내게 무슨 비유를 들어 자신의 게으르고 시들해져 버린 심정을 전달하려 애쓸까. 나는 그에게 부탁하고 싶어졌다. 오늘 하루 동안 좀 더 깊은 연애도 해 보고, 다퉈도 보고, 권태도 느껴 보자고. 저마다 안에 간직해 두거나 감춰 둔 문장들을 모조리, 미리 다 찾아서 써 버리자고.
그게 온다고 한다.
그게 온다면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마지막이 될 것이다. 사람은 마지막에 입고 있던 옷을 죽어서도 쭉 입고 산다지. 그러니 그게 온다 해도 이제 나는 그를 어디서든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찾아내면 쫓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엉뚱한 색으로 꿰맨 단추와 스웨터 어깨 솔기를 보면 그라는 걸 금방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도 단추와 스웨터를 보면서 나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잊지 않을 것이다. 그때 행주로 상을 닦으며 그가 물었다.
“쫓아와서 어쩌려고요?”
“연애하려고요. 그쪽이랑. 죽어서도.”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