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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73234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9-09-27
책 소개
목차
1부 울지 않는 아이 7
2부 우연히 불행한 거라면 37
3부 언제든 살아날 방도가 있다는 듯 77
4부 언젠가는 떠나기를 바라며 113
5부 울면 젊어집니다 155
6부 당연히 행복하겠습니까 183
작가의 말 20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장례식의 상주 노릇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두이의 남편은 밤늦게까지 허름한 사무실을 지키다가 강도의 칼에 찔려 죽었다. 재개발 사업 계획이 공표된 후 크고 작은 중개업소들이 몰리자, 그는 늘그막에 맞닥뜨린 호황을 놓칠까 부지런을 떠느라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곤 했다. 그날도 보온병에 담은 소주를 찻물에 타 마시면서 매물 리스트를 A4 용지에 옮겨 적던 참이었다.
강도는 그의 굽은 등을 한 차례, 꺼진 배를 두 차례 칼로 찔렀다. 바로 옆 미용실 주인이 9시쯤 퇴근을 하려고 셔터를 내리다가 유리문 밑으로 흘러나온 핏물을 보곤 부랴부랴 신고했지만, 시신은 이미 차게 식어 있었다.
“강도의 칼에 찔려 죽다니요, 뭘 훔쳐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요.”
집으로 찾아와 사고 소식을 전하던 순경에게 배두이가 물었을 때 그는 손짓으로 걸어야 할 방향을 알려 주며 말했다.
“죽는 일은 인과응보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는 일이나 그렇죠.”
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부동산 사무실로 돌아간 이후부터 미용실 주인이 시신을 발견하기 직전까지, 고모부가 강도의 칼에 찔려 죽었으리라 추정되는 시간 동안 호재는 매우 화난 상태로 근무 중이었다. 오늘 재수 더럽게 없네. 상암동의 방송국에서 촬영 장소인 망원동의 스튜디오로, 다시 상암동으로 철수하는 일정을 마쳤을 때 호재의 머릿속엔 이 생각뿐이었다.
오늘처럼 재수 없는 날은 처음이다.
동네는 여전했다. 한때 호재가 살던 곳이기도 했지만 떠난 뒤로는 좀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대로변 뒤쪽으로 허무는 중인 건물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이미 철거가 끝난 뒤라 가림막을 세워 놓고 공사 중인 집도 적지 않았으며 셔터를 내린 상가마다 라카 스프레이로 X자를 그려 둔 곳도 많았다. 상가 뒤 연립주택들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 건물 현관의 유리창은 깨져 있고, 열린 채로 방치된 창문 너머로 싯누런 커튼이 펄럭거렸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단층 주택들은 스스로 부서지고 있는 것처럼 지붕이 기울고, 떨어진 기왓장과 널빤지들은 마당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풍경 때문인지 몸에 한기가 돌았다. 고개로 이어지는 경사로에는 헌 가구들과 쓰레기가 가득 찬 포대 자루들이 즐비했다. 호재는 외투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제자리에서 갈팡질팡했다. 마지막으로 고모부의 사무실을 봐 둘 생각으로 들렀는데, 동네는 말 그대로 박살 난 것처럼 보였다. 고모부만 동네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동네 전체가 통째 사라지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