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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86418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12-12-31
책 소개
목차
정크
작가의 말
작품 해설
루저들의 초상과 정크 소설의 탄생_ 이현우(서평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어둠은 끊임없이 나에게서 밀려났고, 다시 밀려왔다. 어둠은 이토록이나 빠르게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지만, 그와 마찬가지의 속도로 끊임없이 나에게 밀려들어 왔다.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어둠. 그것을 밀어낼 수 없다면, 없는 거라면, 그 안으로 깊이 빠져들어 보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끝까지, 끝의 끝까지, 완전히 들어가 온몸으로 마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어둠과 함께 꾸역꾸역 밀려들어 왔다.
이따금 약의 기운을 빌려 어둠의 안쪽으로까지 빨려 들어갈 적이면 차라리 행복했다. 여기는 이렇게 좋은데, 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빠져나와야만 하는 걸까. 외선에서 내선으로, 내선에서 다시 외선으로 순환해 나가는 전동차처럼 안과 밖을 끊임없이 돌고 또 도는 이상한 삶만 주어져 있는 듯해 나는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게, 그리 크거나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메르시에나 나스 같은 세계적 명성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커녕 국내 업계의 조성아, 이경민 같은 자리에라도 오르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는 게 아니었다. 내 이름으로 된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한다거나, 유명 배우와 모델 들과 함께 메이크업 쇼를 개최한다거나, 더불어 학원을 차려 후배를 양성하는 권위적인 일 등은 아예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좀, 지금 여기만 아니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제발 좀, 이렇게만 살지 않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려면 취직을 해야만 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전문가 과정을 이수한 뒤 백화점 수입 브랜드 매장에 판매직이 아닌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말이다. 그게 내 유일한 꿈이라면 꿈이고,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면 희망이었다.
민수 형의 부인은 여자니까, 돈도 많고, 법적 혼인도 할 수 있고, 출산도 가능한 ‘여자’니까, 내가 민수 형에게 해 줄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다 해 줄 수 있는 ‘여자’니까, 그나마 인정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민수 형의 진실한 마음, 그리고 사랑. 그것만큼은 결코 여자가 차지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부분의 필요와 해결을 위해 여자와 결혼한 것은 참아 줄 수 있지만, 진실한 사랑을 나누게 될 상대가 나 아닌 다른 ‘남자’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민수 형과 진실한 사랑을 나누게 될 ‘남자’는 오로지 ‘나’여야만 했다. 민수 형은 내 남자니까, 내가 사랑하는 남자니까, 나와 같은 ‘남자’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절대로 다른 남자에게 민수 형을 양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만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