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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9222045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12-11-21
책 소개
목차
제1부
잘생겼지요?|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시인|하나님의 등을 떠밀다|어머니를 울리다|시집|아버지가 이르신다|벚꽃에 들어앉다|시간을 읽으면|비단개구리를 업다|모기 앞에서|사과를 내밀다
제2부
등불|의자|카키색에 대한 편견|분서|못 꿈|피곤한 발을 언제쯤 풀어줄 수 있을까?|어떻게 혼낼 수 있을까?|나는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다|교가를 부르다|갈림길을 지나가다|거리에 불붙이다|약속|개에게 무릎 꿇다
제3부
멕이는 전략|살생|숟가락에 나비를 얹다|눈썹이라니까요|사십 세|동행|국수|서시 앞에서|오십 세|슬픈 웃음|소음으로 향하다|12. 12.|소|거미 앞에서|김규동 시인
제4부
탱자나무|나는 언제까지 혁명의 책들을 골라 올까?|마침내 신호등이 바뀌었다|우연도 이데올로기|보리수나무 아래에서|용서에 대하여|이끼를 담보로 잡히다|이분법에 대하여|이발소에 가는 이유|주식을 해봐|그에게 전화를 걸어주고 싶었다|나무에게 절하다|시인과 이자|오십 세
해설 오연경|시인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 편집자가 꼽은 맹문재의 시
사과를 내밀다
1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가에 달려 있는 사과들이 불길처럼
나의 걸음을 붙잡았다
남의 물건에 손대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가난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어기고 싶었다
손 닿을 수 있는 사과나무의 키며
담장 안의 앙증한 꽃들도 유혹했다
2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나오는데
주인집 방문이 열리지 않는가
나는 깜짝 놀라 사과를 허리 뒤로 감추었다
마루에 선 아가씨는 다 보았다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3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다시 놀랐다
젖을 빠는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 소 같은 눈길로
할머니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
어머니를 울리다
이모님 댁에 왔다가 시골로 가시려는 어머니를 붙들었지만
상 한번 차리지 못했다
백 년 만에 처음이라고 텔레비전이 떠들어대듯
눈이 너무 오기도 했지만
직장 일을 핑계로 늦게 들어오느라고
외식 한번 못 했다
그렇지만 제대로 씻지 않는다고
공부를 안 한다고
아이들 야단치는 일은 빠트리지 않았다
씀씀이가 헤프다고
아내를 탓하는 버릇도 숨기지 않았다
뛰는 집값이며
노동자를 패는 경찰들을 욕하느라고
집안을 긴장시켰다
어머니가 얼른 내려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아들 흉본다고
붙들어놓고도 설쳐댔다
하루 종일 양계장의 닭처럼 갇혀 있던 어머니가
새우잠을 자는 밤
어디선가 청개구리 울음이 들렸다
아버지가 이르신다
마을 이장이 농자금 추천을 자기 편 사람들만 한다고 이르신다
중풍 때문인지 손발이 뻣뻣하다고 이르신다
시제가 제대로 안 된다고 이르신다
다 캐지 않은 도라지 밭을 땅 주인이 갈아엎었다고 이르신다
올해는 감나무가 시원찮다고 이르신다
날이 가물어 큰일이라고 이르신다
길가의 매운탕집이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 잘 수 없다고 이르신다
민박집들이 오물을 개울에 흘려보낸다고 이르신다
키우던 개가 잘 못 먹어 죽었다고 이르신다
시장 사람들이 중국산 마늘을 국산으로 속여 판다고 이르신다
벌레 때문에 고추 농사가 어렵다고 이르신다
울산 조카가 작업반장한테 맞아 목을 다쳤다고 이르신다
농협장 선거에 돈이 뿌려진다고 이르신다
기름값이 너무 비싸 보일러를 뜯어야겠다고 이르신다
영달네가 자식 놈에게 맞았다고 이르신다
내가 쉬는 일요일 저녁에 이르신다
엊그제 이른 일을 또 이르신다
여든 살 아이가 되어 큰아들에게 이르신다
피곤한 발을 언제쯤 풀어줄 수 있을까?
1
오늘도 무사했구나,
현관문 앞에 서서 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발을 내려다본다
자정 넘도록 집 안에 들지 못한 채 길 위를 걷고 있는 발
비 맞은 강아지처럼 측은하다
나는 발의 피곤한 표정이 정치 뉴스를 듣는 데 지쳐서라는 것을
공사장의 소음에 시달려서라는 것을
곡괭이질에 부쳐서라는 것을 잘 안다
더 큰 이유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2
나는 오늘 천 일 넘게 한데서 떨고 있는 기륭전자에 가지 못했다
무척 가고 싶었지만
논문 마감일에 쫓기느라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그곳에 가는 길은 만만하지 않다
버스 노선이며 골목길도 찾아야 하지만
생업을 잃을 위험도 감수해야 된다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해
나의 발은 하루 종일 바빴다
3
피곤한 발을 언제쯤 풀어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