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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9222069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13-01-17
책 소개
목차
제1부 아라비안나이트|나는 한때|낙엽|패키지여행|질량보존의 법칙|마흔넷|꿈이 사라지다|이른 아침|나는 어부지리로 살고자 하였으나|돼지 껍데기|마산에서|마스게임|홋카이도|결혼식|캥거루의 두 발 점프
제2부 아! 사루비아 꽃을 든 남자|물|에쿠스 지나간다|적(敵)|오렌지 기하학|츄리닝|은유, 신기한 농담|흘러가는 하얀 구름|벚꽃이 지던 날|구강의 날|연말정산|나는 개를 기르지는 않지만|교대역에서|적재적소|풀
제3부 필라멘트|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눈먼 거지|크리스마스트리|오코|서주아이스주|짜증|샴푸나이트|내 사랑 숯불 닭발|피는 못 속여|피는 물보다 진하다|멧새 소리|용각산|윤사월|··
제4부 까마귀 검다 하고|내 시는 약점이 없어|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까막눈|마이동풍|발톱|서울 탱고|축구공|폭포|소|기계, 기계들|암컷 수컷 잡아서 기름이 둥둥 뜨는데|친구들|배우 또는 배우자가 문제다|게임의 규칙
해설 김종훈|시인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아라비안나이트
나는 그런데가 좋다 그리고도 그렇고 그러나도 그저 그렇고 그러므로는 딱 질색이다 그런데 그런데야말로 정겹고 반갑다 누가 손가락으로 나를 딱 짚으며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너는?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야 나야 물론 그런데 순딩이 같은 그리고는 개성이 없다 그러나는 까칠하다 그러므로는 고지식하다 그러니까는 촌스럽다 특히 끝의 두 글자 니까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는 두루뭉술하면서도 날렵하게 빠져 다닌다 그랜저 같다 그런데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천연덕스럽게 자기가 가고 싶은 쪽으로 말머리를 돌린다 그러므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 천 개가 넘는 그런데를 본 적이 있다 안 가본 데가 없고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는 아주 짧게 짜증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른 아침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렁그렁 소 같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나를 어쩔 것인가 아,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꼭 오늘 아침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 먹는 동탯국 머리째 눈망울째 고아내는 시뻘건 그 국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이불 속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개를 기르지는 않지만
지나가다 어떤 강아지에서 체념의 표정을 읽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강아지는 명랑하지만 간혹 시무룩한 강아지를 만나기도 한다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낑낑거리며 불쌍한 척 슬픈 척 연기를 하는 강아지도 있다
강아지는 체념이라는 말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체념이라는 말을 아는 내가 보기에 그것은 분명 체념의 표정이었다 나도 체념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면 모든 것을 단념해야 하는 이 상황과 이 처참한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나는 낙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산낙지로 연포탕을 끓일 때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몸을 뒤트는 것 그것이 체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