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9222106
· 쪽수 : 152쪽
· 출판일 : 2013-06-21
책 소개
목차
제1부 저 산수유꽃|민들레꽃|봄 들판|봄꽃들|주산리 꽃잔치|나바위성당|오월이라고|늦봄|강아지풀|상수리나무들아|뻐꾸기 울음|낮달|참나무들|집의 집|여름비|담쟁이넝쿨|저 석양|바다
제2부 늦여름|봄밤|발목 잡힌 봄|산벚꽃|벽오동나무|빗방울들|오류동 빈터|여름, 쌍봉사|고구마 밭에서|상강(霜降)|옛 마을을 향한 내일의 노래|단감 몇 개|밤안개|폐타이어|막|生의 알|솔바람 소리|살아 있는 것들의 집
제3부 결석|고슴도치 봄밤|꾀꼬리 달|옛집|일림산 철쭉|금잉어들|안마사|셋집|기상대|날이 흐려서|시체 창고|생명의 집|물로, 바람으로, 씨앗털로|물의 비밀|달의 가출|죽음들|걸레옷을 입은 구름|살아 있는 죽음
제4부 산수유 노란 꽃|백양사 숲길|설악, 소식|춘양 가는 길|구름 묘지|고리|구절초 꽃술|삼척 바다|무등산|돌 속의 집|오늘 치의 죽음|숲의 식구들|나는 물이다|오이|빈집|너무 오래 걷는 일을 잊고 살았다|무등산|지구 밖에서
해설 이숭원|시인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 편집자가 꼽은 이은봉의 시
주산리 꽃잔치
화들짝 피어오른 벚꽃들
송이눈으로 흩날리고 있다 목련꽃들
아직 젖가슴 퉁퉁 불어 있다
막내아우의 생일이라고
형제들 주산리 오막살이로 모여든다
아내가 옆집에서 어린 상추를 얻어 와 씻는 사이
나는 차 몰고 시내에 나가
돼지 삼겹살 몇 근 사 온다
고기 굽는 냄새가 피어오르자
조카 놈들, 입 딱딱 벌리며 달려든다
노란 부리의 제비 새끼 같다
이 모습 바라보며 제수씨들
신이 나는 모양이다 아내도
흐뭇한지 배시시 웃는다 누이동생 내외도
조금쯤 늦게 도착해 너스레를 떤다
개나리며 진달래도 낯빛 환하다
민들레며 제비꽃도 눈웃음친다
한참 꽃철인데 그냥 말 수 있겠느냐며
마음 들뜬 어머니가 형제들
한자리로, 주산리 오막살이로 불러들인 것이다
벚꽃들 송이눈으로 마구 흩날려
막내아우 생일잔치, 꽃잔치다
형제들 모여 벅적대는 것 너무 좋아
어머니의 입, 함박만 하게 벌어진다.
낮달
낮달은 한 무더기 찔레꽃이다
나비 떼 뽀얗게 날아올라
초여름 햇살, 꽃잎 꽃잎 떨어져 내린다
가던 길 멈추고 잠시 쉬어보는 숲길
찔레 순 꺾어 먹다 보면
저무는 어스름 저녁볕
삼베빛 솜병아리로 짹짹거린다
해지기 전 서녘 하늘가
밀가루 반죽처럼 둥그렇게
부풀어 오르는 낮달
어디선가 국수 삶는 냄새가 난다
걸음걸음 탱자빛 노을이 흔들리고
새뽀얀 나비 떼가 흔들리고
숲길 깨우는 북소리, 둥둥둥 구수하게 익는다.
막
자귀나무 분홍 꽃잎과 나 사이에는 어떤 막도 없다 아니 막이 너무 엷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자귀나무 분홍 꽃잎에게로 건너가 자귀나무 분홍 꽃잎으로 피어오르더라도 누구 하나 아프지 않다
불어오는 건들바람을 따라 자꾸만 제 몸을 살랑대는 자귀나무 분홍 꽃잎,
그녀의 가슴에는 이미 작은 내 한숨이, 손때 묻은 내 책이, 포근하면서도 너절한 내 침실이 들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흔들리는 자귀나무 분홍 꽃잎의 막은 봄이 지나면서 더욱 엷어진다
마침내 여름이 오면 자귀나무 분홍 꽃잎과 나 사이에는 어떤 막도 없이 사랑이 익는다
아직은 벌레 새끼 한 마리 키우지 못하지만……
흔들리면서도 흐르는 시간을 따라 나는 자꾸만 잦아드는데
그녀는 간드러지는 제 몸을 외로 꼬며 겨드랑이 아래로 거듭 푸르른 꽃망울들 밀어 올린다
마침내 나는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 대신 자귀나무 푸르른 꽃망울이
작은 내 한숨으로, 손때 묻은 내 책으로, 포근하면서도 너절한 내 침실로 커 오른다 그렇게 둥근 원으로 나는 천천히 다시 또 있다 없으면서 있다.
生의 알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쳐야 生의 껍데기는 깨지지 生의 껍데기가 깨져야 알은 태어나지
生의 알…… 알에서 태어나는 生은 외롭지 슬프지 아프지
바퀴가 달려 있기 때문이지
바퀴는 돌고, 도는 바퀴의 축에는 ‘떠돌이’라는 굵은 글씨가 새겨져 있지
더러는 ‘나그네’라는, 더러는 ‘낙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기도 하지
‘아버지’ 혹은 ‘고향’ 따위의 글씨는 새겨져 있지 않지
바퀴가 달려 있는 알의 生,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글씨는 금세 사라지지
구르는 알의 生은 하나의 까만 점, 멈출 줄 모르지
멈추면 흙 속으로, 대지 속으로 아름답게 미끄러지는 거지 어머니의 자궁 속, 딱딱한 알의 껍데기를 뒤집어쓰는 거지
껍데기를 깨고 다시 밖으로 튀어나올 때까지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퀴는 구르지 구를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며 신화와 전설을 만드는 알의 生
끝내 저를 깨뜨려 밖으로 튀어나오는 알의 生, 때가 되면 그도 멈추기 마련이지 바퀴에 구멍이 나기 마련이지
같으면서도 다른 生이 시작되는 거지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生……
아들의 生도 마찬가지지 그 또한 새로운 바퀴를 단 채 앞으로 달리지
그렇지 모든 생은 다 달리지 달리는 生은 외롭지 슬프지 아프지.
옛집
여우비 한줄금, 꼬리를 감춘 뒤였네
대문을 열자 잡풀 우거진 마당가
반쯤 들려 있는 돌쩌귀
은빛 거미줄에 싸여 하얗게 빛나고 있었네
온통 물에 젖은 채
사랑채 토광 속에는 묵은 살림들
건넌방 툇마루 위에는
차마 버리지 못한 오랜 세월들
놋주발이며 양재기며 종이 그릇 따위
눅눅히 몸을 비틀며 누워 있었네
이끼 낀 뒤꼍 장독대 위, 깨진 항아리 속에는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져
잔뜩 찡그린 채 뭉개져 있거늘
무엇 향해 안부를 물을 것인가
들큼하게 메주가 익던 끝방
나지막한 시렁에서는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네
우물가에는 두충나무 잎사귀들
이제는 아무도 약으로 쓰는 사람이 없어
퀴퀴한 냄새를 끌어안은 채
뭉텅뭉텅, 떨어져 썩고 있었네
텅 빈 외양간의 누렁이 따위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네 사람의 훈기가 있어야
탱자나무 울타리도 하얗게 꽃 피우는 것 아닌가
조상님들의 잿빛 얼굴만
집 안 구석구석, 먹구름으로 일고 있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