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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9222243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14-09-26
책 소개
목차
제1부 기계의 눈|김말굽 씨의 가방 하나|코|코끼리|위험한 기술자|풀타임|노동 거부 운동|불나비|푸른 악수|트럭|웃음의 꼬리|연탄구이집에서|텅 빈 울림|수입검사 김 과장|근로자복지아파트|돌아보니 그가 없었다|바이올린을 켜는 노동자
제2부 달|모자|흘림|거머리|갑골문자|먼지의 두께|아담의 정원|나는 죽지 않았습니다|무쇠 바람|그늘을 옮기다|아나고|살아 있는 설화(說話)|비둘기|장날 오후|대파밭에서|그럼에도 또 그럼에도
제3부 돌아오라, 노래여|서쪽으로|부리|자작나무|누님의 가실|버찌가 익을 때|대성연탄공장 굴뚝|어머니의 방|방아깨비의 노래|모진 꿈|백학|실연은 없다|노인자살예방센터|낮 열두 시|시가 나를 용서케 하고|똥꽃|꽉!
제4부 억부인 국숫집|거기 가면 일이 있다|그녀의 작은 책방|밤차를 타고|돌마루 이야기|목숨에 대하여|행복빌라 버스 정류장|차가운 꽃들이 피어 있는 공원|자정의 픽션|다락방 소녀|개 한 마리|돼지 복지법|대한민국이라는 엽기 소설|새우리말사전 1|새우리말사전 2|새우리말사전 3|새우리말사전 4
해설 노지영|시인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 편집자가 꼽은 임성용의 시
기계의 눈
밤낮으로 돌아가던 기계가 섰다
망가진 회전축을 뜯어 베어링을 꺼냈다
기름 범벅으로 끈끈하게 엉겨 붙은 쇠구슬들
알알이 박힌 기계의 몸통을 빠져나와
검게 마모된 동공을 열었다
떼구루루, 한 개의 눈알이 굴러떨어졌다
숨죽인 눈동자를 장갑으로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그때, 헐떡거리던 내 눈 속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하얀 쇠구슬들
은빛 쟁쟁한 눈을 번득 떴다
죽어 눈감지 못한 수많은 눈동자들이
깨진 창문 틈에서 한 줄기 빛으로 어른거렸다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기계의 눈들이
단단하고 차갑게 내 눈을 찔러왔다
코
도금 공장에서 십 년을 일한 형이
코에 구멍이 뚫려 돌아왔다
중금속중독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부리부리한 눈을 타고 오뚝하게 솟은 코뼈 속에
수십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렸다
형은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입맛도 밥맛도 잃었다
머리통이 터질 듯이 아프다고 했다
콧대가 내려앉아 사지가 쑤시고 떨린다고 했다
꼭지처럼 형을 꿰고 있는 코에서
윤기를 잃고 가뿐가뿐 숨을 쉬는 콧구멍에서
촉촉하게 반짝이는 숨결이 차츰 썩어갔다
형은 코를 벌리고 누렇게 흐르는 농을 닦아내며
골방에서 코뼈가 녹아내리기를 기다렸다
물 위에 뜬 물고기처럼 뻐끔뻐끔 방 안을 맴돌았다
형은 죽기 전까지 이불로 얼굴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므로
나는 끝내 형이 숨겨놓은 늠름한 코를 보지 못했다
풀타임
친구들은 대부분 감옥에 수감되었다
농민도 노동자도
엔지니어도 화이트칼라도 함께 갇혔다
장사꾼도 청년들도
수감 생활에 적응하고 저항을 포기했다
체념이란 총칼보다 무섭고 세금보다 무겁지만
때론 고픈 배를 채워주는 상한 음식처럼 시큼한 것
친구들은
왕성하게 발기된 희망을 섞어 트럼프 놀이를 하고 있다
조마조마하지만 불안정한 미래는 늘 조커처럼 숨어 있다
다행히 무기형으로 감형된 나는 더 이상 이력서를 쓰지 않는다
그렇게 풀타임 정규직이 되고 싶은가?
그렇게 그들의 완전한 가족이 되고 싶은가?
나에게 남은 것은 집단적으로 구제를 거부하는
폭동처럼 격렬한 희망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