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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46473317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0-05-29
책 소개
목차
1부 _ 되면 한다
오, 하필 그곳에! / 펠레의 전설 / 되면 한다 / 자전거의 값 / 시인은 말했다 / 투 잡 / 예쁜 누나 동창생 / 내 정신은 어디에 / 운 좋은 사람 / 진정 난 몰랐었네
2부_ 생각의 주산지
오늘의 당신은 오직 어제까지만 가졌을 뿐 / 똑딱이의 최후 / 원한다면 달려주마 / 비둘기는 새다 / 바흐의 선물 / 서시의 계산 / 동무생각1 / 동무생각2 / 마그마가 끓인 라면 / 생각의 주산지 / 아부다비의 보물성
3부_ 물 맑고 경치 좋은 곳
라디오 일병 구하기 / 비 오는 저녁의 연주회 / 최상의 스피커 /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봄 / 물 맑고 경치 좋은 곳 / 닭이나 기러기나 / 다음에, 나머지 반도 / 토종이 좋아 / 전문가의 충고
4부_ 수꾸떡의 비밀
‘병 따기’의 예술 /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빵과 나1 / 빵과 나2 / 상도냐 상술이냐 / 염장면, 그리고 냉면 / 수꾸떡의 비밀 / 냅킨에 쓴 편지 / 애향심의 탄생 / 축복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앞차의 문이 양쪽으로 열리고 머리가 짧고 체격이 건장한 두 사내가 내렸다. 운전대를 쥔 C의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 똘지 마, 똘지 말라고!”
O는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스스로도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그가 차문을 연 채 땅에 한발을 딛고 또 다른 발을 딛으려는 차에, 땅에 웬 커다란 망치 - 공사현장에서 흔히 ‘오함마’라고 불리며 기다란 손잡이 끝에 육중하고 뭉툭한 금속 덩어리가 달린 도구로 보통 망치보다 더 큰 힘을 가할 수 있어 콘크리트 거푸집 등을 깨뜨릴 때 사용한다 - 가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절묘하게도 차와 길가 밭 사이의 틈에, 박달나무 자루를 달고 금속의 몸체에 벌겋게 녹이 슨 채.
“아니, 이게 여기 왜 있는 거야?”
말을 하면서 O는 자신도 모르게 그걸 집어 들었다. 한 손으로 들기에는 약간 무거운 듯해서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가 오른손으로 바꿔들었다가 하면서 무게를 가늠했다. C를 돌아보며 “이게 왜 길바닥에 있을까?” 하면서 오함마를 이 손 저 손으로 주고 받기도 했다. C는 전화기에서 여전히 손을 떼지 못하면서도 “있을 만하니 있겠지. 상태가 나쁘지는 않네” 하고 대꾸했다. O가 앞을 바라보자 아까 차에서 내렸던 머리 짧은 두 남자가 5, 6미터 앞까지 와서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하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었다.
“왜요, 아더씨들! 뭐 할 말 있드세요? 있냐고?”
O는 오함마를 머리 위로 빙글빙글 돌리다가 번쩍거리는 상대방의 승용차를 겨냥했다. 여차하면 때려 부술 수도 있다는 듯이. 그러자 두 남자 중 하나가 급히 “아녜요. 우리 그냥 지나가다가 하도 운전을 안전하게 잘하시는 것 같길래 좀 배우려고 그랬던 겁니다” 하고는 동료를 향해 눈을 껌벅거렸다. 그의 동료는 그만한 말주변조차 없는지 커다란 주먹을 서로 포갠 채 서 있을 뿐이었다.
- ‘오, 하필 그곳에’ 중에서
일주일이 지나도 도대체 뭘 파는 것을 보지 못하던 나는 더 참지 못하고 할머니에게서 참기름을 한 병 사고 말았다. 병에는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어 읍내 기름집에서 짜서 팔 것이니 원산지나 제조자, 공급자가 표시된 공장 산과는 다르게 라벨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는 김에 설악산 특산물이라는 취나물, 참나물, 말린 버섯까지 한 봉지씩 샀다. 그때 시인 O가 어딘가를 다녀오는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게 다가왔다.
“걸려들었네. 소설가들은 경제를 안다느니 하면서 세상 물정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를 치더니만.”
“뭐에 걸렸다는 거예요
“그거 중국산이라고. 중국산 참기름에 중국산 들기름이나 중국산 식용유 같은 게 적당히 섞인. 진짜보다는 좀 싸고 가짜보다는 많이 비싸지. 이익이 그만큼 크고. 그런 걸 ‘할매 장
사’라고 하지. 영악한 장사치들이 아침마다 승합차를 가지고 시골 마을마다 가서 할머니들을 모셔다 주요 거점에 떨어뜨려 놓고 어리숙한 뜨내기손님 걸리면 바가지를 씌우는 거야. 그게 요새 장사가 되는 유일한 아이템이라대. 저 할머니가 다 이야기해 줬어.“
할머니는 멀찌감치 앉아서 앞니가 두엇 빠진 잇몸을 보이며 웃고 있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그럼 이게 다 가짜라는?”
“가짜는 아니지. 먹을 만은 할 거야. 두고두고 배는 아프겠지, 좀 비싸게 줬으니.”
- ‘시인은 말했다’ 중에서
되도록 화석연료로 작동되는 기계를 쓰지 않고 사람과 자연의 힘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는 게 P의 신조지만 워낙 풀숲이 광대하고 풀이 웬만한 나무마냥 억세기까지 하니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시험 삼아 예초기를 가지고 풀숲으로 가서 몇 번 가동을 해본 결과, 그는 몇 가지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풀을 베려면 풀잎이나 가시에 피부가 긁힐 수도 있고 뱀이나 벌집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가릴, 예컨대 반도체 회사 연구원처럼 방진복 차림을 하면 좋은데 농촌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어쨌든 그는 장화를 신고 비옷을 입고 망사로 얼굴을 가렸으며 테이프로 망사와 비옷 사이 틈새를 단단히 막은 뒤 색안경을 끼고 밀짚모자를 쓴 채로(제법 안드로메다에서 온 우주인 티가 난다고 했다) 아주 이른 아침이나 해 지기 직전, 더위가 좀 수굿해질 때를 타서 풀을 베러 나갔다.
실전에 나가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모기가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대단히 많았다. 그것도 가정집 모기가 아닌 숲모기의 암모기가 상대였다.
산란을 앞둔 숲 속의 암모기는 생명체의 본성인 유전자 번식이라는 절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일생에 한두 번밖에 주어지지 않을 기회를 기다려왔을 것이다. 밭에서 풀 한 번 베려면 수십 수백 마리의 모기들한테 피를 빨릴 각오를 해야 했다. 그래서 그가 초음파 모기 퇴치기, 줄여서 ‘초모퇴’를 주문한 것이었다.
- ‘동무생각1_초음파 모기퇴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