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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4658515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9-11-11
책 소개
목차
1부 소설 쓰고 있다
나의 스승 알파칸
맛있는 책, 일생의 보약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쇳덩어리
지도와 소설
영원한 어른의 아이
이화령 남쪽, 각서리
홍명희와 나
따뜻한 쌀국수의 기억
이 세계의 진미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
시인은 말했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제2부 나라는 인간의 천성
첫맛의 경이
삶을 기쁘게 만드는 별식
봄의 은혜로 만드는 비빔밥
홍익인간의 음식
특허를 낼 뻔한 음식
맛집의 비밀
전통을 잇기 힘든 이유
귀룽나무 꽃 피운 소식
촌닭을 기리며
생명의 노동
시월
늙지 않게 하는 약
3부 실례를 무릅쓰고
안아주세요
깔딱고개가 있어야 할 이유
싸구려의 복수
부끄러움 유전자
할말은 하는 유전자
문제 해결의 비밀
우리 아이가 이렇게 변했어요
하늘은 남을 돕는 자를 돕는다
허공을 쳐다볼 때는 발밑의 구덩이를 조심하세요
중독의 언어, 각성의 문장
아이가 본받는 부모
부자가 되는 이유
전문가의 생업
껍질이 본질을 뒤흔드는 세상
자투리가 없다
점방, 구멍가게, 동네 슈퍼를 기리며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
제4부 여행 뒤에 남는 것들
어느 좋은 날
눈부신 힘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여행
요원의 불길을 바라보며
여행 뒤에 남는 것들
새벽, 개벽
여행의 속도
극락은 여기 어딘가에 있다
여행이 끝나갈 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 이름 뒤에 ‘소설가’라는 생경한 호칭이 처음 붙게 된 1995년 이후 나는 다시는 시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시를 쓸 수도 없게 되었다. 한 인간이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배워 익히게 되면 두뇌의 기능 연결 방식에 영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다시는 그걸 배우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어떤 소설을 쓰든 마찬가지였다. 싫든 좋든 나는 그 소설을 쓴 작가로 기억되었고 그 소설을 쓰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도와 소설」)
대화는 지속된다.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저녁을 먹은 뒤 여름밤의 산책과 카페에서의 나직한 이야기와 두런거림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얼마 전까지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두 나라 정상끼리의 역사적 회담 못지않게 중요하다. 비록 그것이 “아니…… 진짜…… 그래서…… 그러니까…… 아주 조금…… 굉장히…… 있잖아…… 사실은…… 말이지”로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람과 사람 서로 간의, 지성체 간의 대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중하고 단 한 번, 한 순간뿐인 우리의 삶이자 비전이며 성스러움에서 비루함까지 인간세의 표리를 명경처럼 반영하는 것이니.
(「근데, 사실, 조금은, 굉장하고, 영원할 이야기」)
빅뱅처럼 경이롭고 고유한 순간은 언제나 짧다. 매일 새로운 하루 24시를 개벽하는 새벽 또한 숨쉴 사이조차 없이 사라져간다. 치솟은 태양이 새벽의 박명을 유리그릇처럼 깨뜨리며 쳐들어온다. 어디선가 거대한 얼음장이 무너져내리듯 어둠의 형해가 무너지고 있다.
나는 어느 여름 새벽에 태어났다고 들었다. 새벽에 태어나서인가.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새벽을 위해서라면 하루 중 새벽 이외의 시간 전부를 저당잡혀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짧고 불완전하고 흐릿한 한때, 그래서 인간적이고 예술적이고 자연의 본성에 가까운 그 시공간. 새벽의 정신처럼 새벽의 문장 역시 맑고 간명하다. 새벽이 준 단어는 사물 위에 단단하고 깊게 박을 수 있다. 새벽에 쓴 편지의 문장은 하나 버릴 게 없다.
(「새벽, 개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