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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0931520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1-06-30
책 소개
목차
● 내게 사랑은 증오였으며 기쁨이었다 8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내게는 혁명이었고 그들에겐 배신이었던 사랑 36
가네코 후미코 & 박열
● 유서를 써내리듯 두려움으로 치열함으로 68
버지니아 울프 & 레너드 울프
● 영혼으로 몸짓으로 사랑을 노래하다 100
오노 요코 & 존 레논
● 왕관보다 찬란한 궁전보다 고결한 사랑 126
월리스 심프슨 & 에드워드 8세
● 불신으로 시작된, 헌신으로 완전해진 사랑 162
빅토리아 & 알버트
●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주오 198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 로버트 브라우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디에고와의 결혼생활은 항상 허기졌고 그리웠다. 그래도 디에고의 아내가 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디에고가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맺어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사실 디에고는 그 어떤 여자의 남편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디에고가 만나는 여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낯선 타인이었다. 계속 그 여자들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 채 타인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내가 가장 좋아했고 나와 모든 것을 함께했던 나의 여동생. 크리스티나는 내 사랑까지 함께하고 싶었던가 보다.
디에고의 오랜 버릇이었다, 연인의 자매나 친구와 바람을 피우는 것은. 버릇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너무나 자주, 너무나 많이 일어났던 일이었으니까.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모든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그의 성향을. 이해하려 애썼다, 사랑하는 이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그의 잔인한 성격을.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해서, 상처의 쓰라림이 덜어지지는 않았다. 디에고를 위해 길렀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하지만 디에고를 향한 사랑은 잘라낼 수 없었다.
디에고는 한 여름의 폭설이었다.
황당하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흠뻑 젖어 떨고 있어야 하는.
난 그저 쏟아지는 눈을 맞고 서 있었다.
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 눈보라를 사랑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란 감정이 ‘이성’을 잃게 하고 ‘감각’마저 마비해 모든 생명체가 지닌 ‘생존본능’조차 포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 완전하게 순수한 ‘절대성’이 곧 사랑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혹독하리만큼 순결한 사랑이었다.
지금 사랑 때문에 고통스럽고 그 애절한 희망고문에 애태우고 있는가? 헤어져야만 하는 수많은 이유에도 차마 그 사랑을 외면하지 못하고 있는가? 괜찮다. 어차피 또 다른 사랑을 찾는다 해도 그 사랑 역시 고통일 테니…….
사랑은 누구에게나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힘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조금만 더 그 사랑에 미쳐라! 그 고통조차 느낄 수 없도록…….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먼저 박열의 동료들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이 사건이 우습게 보인다면 우리를 비웃어달라고. 이것은 우리 두 사람의 일이다. 다음으로 재판관들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모든 것은 권력이 만들어낸 허위이고 가식이다.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 위에 세워 달라! 나는 박열과 함께 죽을 것이다. 박열과 함께라면 죽음도 오히려 만족스럽게 여길 수 있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혼자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 위에 세워 달라!
나는 박열과 함께 죽을 것이다.
박열은 선언서로 최후진술을 대신했다. 재판장이 기립을 명령했다. 우린 일어서지 않았다. 재판장이 큰 목소리로 선고했다.
사형!
난 곧바로 일어서서 두 손을 번쩍 들며 만세를 외쳤다. 박열도 “재판은 비열한 연극이다”라고 소리쳤다. 우린 사형 선고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다. 우린 끝까지 당당했다.
퇴정하는 판사를 향해 박열이 덧붙여 말했다.
“재판장, 자네도 수고 많았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