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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88950967093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14-10-15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_ 얼굴 너머의 얼굴
1부. 신화 속의 얼굴에서 인간의 가면까지
01 얼굴은 눈, 코, 입, 귀, 머리의 집합체
얼굴 자체가 상징은 아니다|눈, 빛으로 세상을 보는 곳|코, 냄새로 세상을 맡는 곳|입, 숨 쉬고 빨아들이고 먹는 곳|귀, 말과 말의 힘을 받아들이는 곳|머리,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얼굴은 상징이 모인 조각보
02 그리스 신화 속 얼굴의 상징
페르세우스의 모험|메두사 얼굴의 진실
03 가면, 인간이 걸친 최초의 얼굴
영혼을 되살리는 원시 사회의 가면 |그리스 가면의 양면성
04 가면과 얼굴의 이중주
디오니소스 숭배가 연극으로 탄생하다|감정, 드러내거나 감추거나|서양 가면과 하회탈의 공통점|광대가 벗긴 가면 속의 얼굴
05 다양한 가면의 세계
얼굴을 가리기 위한 가면|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가면|보호하기 위한 가면
2부. 얼굴의 참모습 들여다보기
01 유교 사회가 버린 변강쇠
한국판 고르곤 형상들|변강쇠 이야기|변강쇠와 페르세우스의 차이|변강쇠의 거세가 상징하는 것|질서를 깨려는 그들에게 내린 저주
02 거울, 얼굴에 대한 의식을 바꾸다
거울 없는 사회에서 나는 누구?|타인에 의해 나는 만들어진다|나는 거울을 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03 가면의 나에서 개인의 나로
역사와 사회가 만든 ‘자아’ 개념|혼자 있을 때 얼굴은 없다
04 복잡한 얼굴의 세계
얼굴아, 얼굴아, 너 진짜 뭐니?|얼굴, 인간성을 증명하다
3부. 초상화에서 사회적 통제까지
01 미술은 얼굴을 어떻게 다루었나?
얼굴은 미술의 금기|예수의 얼굴도 상상의 대상인가?
02 동서양 초상 미술의 역사
동양 미술, 개인에서 가족으로|서양 미술, 이콘에서 자화상으로
03 얼굴 통제와 형식 부여
골상학이 앗아간 얼굴|과학으로 자행된 얼굴 말살|부르주아에게 얼굴을 부여하다|가면의 귀환
4부. 얼굴 훼손과 현대적 상상
01 현대 미술에 나타난 얼굴
미술과 영화에서의 얼굴 훼손|결코 평범하지 않은, 극단적인 얼굴들
02 얼굴 가치의 회복을 위하여
전쟁, 얼굴의 환상을 파괴하다|주체의 파멸|점점 더 일그러지는 얼굴|잃은 것은 정신적 가치
나가는 말 _ 얼굴의 신비
참고문헌
주
책속에서
흥미롭게도, 얼굴 그 자체는 사실상 어떤 상징이나 원형이 될 수 없다. 머리나 입, 눈은 그럴 수 있어도 얼굴은 그럴 수 없다. 왜일까? 이 이야기는 나중에 “얼굴은 지식의 총체 그 이상”이라고 했던 프랑스 철학자 임마누엘 레비나스를 다루면서 다시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학 연구에서도 어느 정도는 답을 얻을 수 있다.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 섬의 원주민인 카낙족 노인의 말을 상기해보자. 그는 자신들을 연구하던 한 연구원에게 “당신네(백인)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은 육체였다”고 말했다. 서양 문명을 접하기 이전의 카낙인들은 우주와 육체를 달리 보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있어 육체는 자연 세계의 일부였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육체가 분리된 실체라는 ‘관념’을 갖게 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얼굴’이라는 개념이 생각처럼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본질적으로 얼굴이 왜 우리의 심오한 상상계 안에서 상징물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이 신화에서 우리는 페르세우스가 최소한 두 번 태양의 상징과 관계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바로 그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점과 모험의 결과로 페가수스를 얻었다는 점이다(페가수스는 제우스에게 벼락 화살을 날라다 준다). 태양의 영웅인 그는 태양이 지는 곳, 서쪽 땅에 사는 괴물과 싸워야 한다. 어떤 분석가는 이 신화가 ‘겨울’에 맞선 생명력의 승리를 담은 이야기라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가계도에서 이미 보았듯이 고르곤은 대지와 연관된 괴물이다. 그리고 스쳐 지나는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더 흥미를 끄는 것은 이 신화 속 머리의 역할과 얼굴 상징이다. 우리는 날개 달린 마법의 신발을 신고 하늘을 나는 페르세우스에게 주어진 임무(메두사의 머리를 베는 것)에 내포된 수직성과 태양 친화성(solar tropism)에 주목해야 한다. 메두사의 머리는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과 수퇘지의 이빨을 가진 존재로 매우 잔인하고 동물적이다. 하지만 페르세우스의 역할은 그 야성을 제압해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반짝이는 둥근 방패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태양의 거울이 여기서는 칼보다 더 위험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메두사는 이 태양을 닮은 방패에 비친 자기 자신,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얼굴, 즉 끔찍한 자아를 보고 ‘얼어붙는다’.
디오니소스 숭배에서 연극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직접적인 연극적 행위와 ‘존재’에서, 우리는 디오니소스 세계가 가지고 있는 본질 즉, 배우는 존재하지만 그 배역은 존재하지 않는 이중성(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삶과 죽음의 만남, 돌이킬 수 없는 운명, 그리고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과 환상 등에 감동한다. 오토의 말처럼, “이 이중성은 가면에 그 상징성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가면을 쓴 사람(배우)은 누군가 다른 사람, 즉 ‘자신이면서 또한 다른 누군가’인 신이나 영웅을 대신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는다. 이 배우는 가면을 쓰고 춤을 추던 고대 그리스인의 현대판이다. 이들은 수호신과 소통하는 황홀경이라는 유산을 공유한다. 다른 이의 얼굴을 입은 그는, ‘이중적인 존재(디오니소스)’의 영이 내려주는 은혜에 감화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 공동체의 주목 하에 그가 구현하고 있는 부재-존재의 신비는 기적이 된다. 하나의 미술 작품에 불과한 가면이 실체가 되고 육체가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