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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글쓰기
· ISBN : 9791193591468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5-11-20
책 소개
“만약 그대가 한껏 자유로워진다면
그 글은 어쩌면 SF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인간과 비인간의 인간적 초상을 나란히 그려냈고 동시대 사회적, 환경적 이슈들에 관해 사유한다.”
_《종의 기원담》에 대한 전미도서상 심사위원단의 심사평
“김보영의 소설은 그 자체로 숨 막히는 영화적 예술 작품이다. 〈매트릭스〉 〈인셉션〉 〈다크 시티〉에서 경험했던 세계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구조로 우리를 이끌며 획기적이고 신비로운 문학적,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정말로 강렬하면서도 우아하다.”
_《당신을 기다리고 있어I'm Waiting For You and Other Stories》에 대한 봉준호 영화감독의 서평
“김보영의 책은 레이 브래드버리와 어슐러 르 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옆에 놓일 것이다.”
_《고래눈이 내리다Whale Snow Down》에 대한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서평
이처럼 기념비적 SF 작품들을 써온 작가이지만, 그 역시 신인 시절 SF가 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공부해서 답을 해야 했다. 그건 마치 처음 외국에 간 한국인이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인의 특징을 설명해달라”고 질문 받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서 SF 소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고, ‘(SF적) 세계관’이 뚜렷하고 매력적인 작품들이 전 세계 넷플릭스 관객들을 사로잡는 시대이지만 SF는 여전히, 어쩌면 더욱 종잡을 수 없는 개념이 되었다.
종잡을 수 없는 SF에 도전하는 예비 소설가들에게 저자는 “당신이 SF를 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글쓰기를 시작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조언한다. SF도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는 개인적 관심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교육에 문제의식을 느낀 저자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재현한다는 분명한 목적으로 〈0과 1 사이〉를 썼다. 어슐러 K. 르 귄은 아나키즘적인 공동체 사회의 사고실험을 위해 《빼앗긴 자들》을 썼고, 도리스 레싱은 괴물을 임신하는 여성을 통해 출산의 공포를 그린 작품 《다섯째 아이》를 썼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신의 관심사를, 당신을 웃고 울고 설레게 하는 것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다.
“무엇이 당신의 당면한 관심사인가.
무엇이 당신을 웃고, 울고, 설레게 하는가.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방법이 SF에 속한다면 SF를 쓰라. 그렇지 않다면 그저 자유롭게 쓰라. 아마도 SF라는 폭넓고 너그러운 장르는 그대의 자유로움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대가 한껏 자유로워진다면 그 글은 어쩌면 SF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본문에서)
저자는 SF를 쓰려는 이들에게 그 개념에 갇히지 말고 자유로워지기를 독려하면서도, SF에는 그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음을 강조하며, SF를 쓰기 위해 자신이 체화한 방법론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그렇다. SF를 정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분명한 점은, 어떤 경이로운 SF 작품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황홀경에 가까운 체험을 선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매력에 빠져본 이들은 열렬한 독자가 되고, 나아가 작가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 SF를 쓸 수 있을까?
좋은 SF를 쓰기 위한 비책 1
― SF의 서사의 주역은 둘이다
첫 번째 핵심은 ‘소설의 3요소’인 인물/사건/배경 가운데 SF에서는 ‘배경’이 인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설정’이다. 저자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설정은 보편적으로 하나이기에 ‘주설정’으로 정의한다. 이 주설정은 주인공과 함께 서사를 이끌고, 역시 주인공과 함께 갈등의 중심에 있어야 하며 결국 그 해결도 주인공과 함께 해야 한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주설정은 ‘방패’다. 이 이야기는 유약한 주인공이 유약한 방패인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주설정은 ‘모임’이며, 그 많은 영웅들이 모이는 결말은 적을 물리치는 장면보다도 더 중요한 순간이다.
나쁜 예로는 조스 웨던 감독 판본의 〈저스티스 리그〉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중간에 배트맨이 죽은 슈퍼맨을 되살리기로 했을 때 서사의 힘을 잃는다. 이 작품 역시 주설정은 ‘모임’이며, 한 명의 강한 인물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한 결정은 마치 주인공이 사망한 것처럼 이야기의 흥미를 잃게 만든다. 저자의 경우는 어떨까. 《저 이승의 선지자》에서 저자는 ‘사후세계가 실상 모든 생물이 하나의 생물인 세계’라는 상상에서 출발하여 ‘세계는 하나의 생물이고 우리는 그 파편이다’라는 주설정을 도출한다. 따라서 서사의 갈등은 ‘합일’하느냐 ‘분열’하느냐이고, 이 둘을 각각 대변하는 인물이 주요 인물이 된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주인공 나반은 분열하려는 아만과 합일하고자 한다.’
좋은 SF를 쓰기 위한 비책 2
― 가장 핵심적인 것을 대놓고, 뻔뻔하게, 빼 째라며 틀려라
‘좋은 SF는 과학적으로 엄밀해야 하는가?’ 이 논쟁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틀려라
․ 그 외의 쓸데없는 것들은 과학적으로 엄밀하라
하드SF의 정수로 불리는 《쿼런틴》은 양자역학에 기반한 소설이다. 입자 수준의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불확정한 가능성이 거시 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과학적으로 아예 틀린 상상이 전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이 틀리지 않으면? 소설은 시작도 할 수 없다. 역시 세계적인 SF 작가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은 우주가 원통형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당연히도 사실이 아니다. 저자의 《종의 기원담》에는 의식과 자아를 가진 로봇들이 등장한다. 현재로서는 상상의 영역이지만 이를 전제하지 않으면 이 소설은 태어날 수도 없었다.
여기서 핵심은 틀린 것들이 모두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팬이라면 모두 좋아하는 초광속 우주선 팔콘은 주인공이 위기에 빠졌을 때 탈출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만약 팔콘이 아무 쓸모가 없는 배경 중의 하나라면? 초광속으로 날지 말아야 한다. 과학적으로 엄밀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체호프의 총’ 원칙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이야기에서 총이 나왔다면 반드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또 다른 한 가지 원칙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핵심 외의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엄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쿼런틴》에서 핵심 이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최대한 과학적인 근거 하에 진행된다. 〈바빌론의 탑〉은 원통형 우주를 발견하기까지 탑을 쌓아올리는 동안 중요하지 않은 모든 부분, 즉 벽을 뚫고, 쌓는 건축적인 모든 과정이 매우 현실적이다. 핵심적인 것 외의 모든 부분에서는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몰입할 수 있을 만큼 개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개연성의 해상도가 높은 만큼 몰입감도 커진다.
“뻔뻔하게 틀리라.
그런 뒤에는 틀렸음을 알라. 그걸 모르면 또 다른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 뒤에는 그 틀린 세계를 진심으로 믿으라. 진심으로 믿고 그 진실함 속에서 세계를 펼쳐나가라.(...)
얼마나 뻔뻔하게 틀렸는가가 독자에게 쾌감을 주며, 그 틀린 세계를 얼마나 엄밀하게 펼쳐나갔는가가 두 번째 쾌감을 준다. 둘은 상호 보완적이며 어느 하나만으로는 SF가 충분히 아름다워지지 않는다.”(본문에서)
좋은 SF를 쓰기 위한 비책 3
― 이중 스토리라인으로 독자를 놓치지 말라
사람들은 왜 SF를 어렵다고 느낄까? 저자는 이 물음에 깊이 고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다른 문학보다 정보량이 많은 SF가 쉽기만을 요구한다면 그 역시 뭔가 본질을 잊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SF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 반면, 팬이라면 이 장르를 깊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과학을 더 잘 알아서 팬이 될 수 있는 걸까? 최근 국내 베스트셀러 SF의 경우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전체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면, 과학을 잘 아는 독자들이 새롭게 SF 시장을 창출했다기보다는 일반 문학 독자들이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도 보인다.
저자는 자신의 단편 〈땅밑에〉를 강의 자료로 쓴 대학 강사로부터 학생들의 90퍼센트가 마지막 반전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려운 과학을 쓰지 않았는데도 그렇다는 것이 의아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을 있는 대로 때려 넣고 양자역학에 시간여행 이론도 집어넣은 작품 〈0과 1 사이〉는 사람들이 잘 이해한다는 사실에 또 의아해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인터스텔라〉의 성공에서도 찾아낸다. 이 영화에서는 〈0과 1 사이〉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스토리라인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는 ‘블랙홀 안까지 들어가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를 구해내는 경이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아버지가 딸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다. 과학을 몰라도 애끓는 부성애의 서사에 충분히 값을 치를 만하다는 말이다.
창작은 모든 면에서 만점을 향해 달리는 시험이 아니다
한 경지를 이루는 세계다
작법의 핵심은 명쾌하게 제시하고, 쓰기 전후 작가의 준비 과정과 작품을 대하는 태도들도 폭넓게 다룬다. 〈쓰기 전〉과 〈쓰고 나서〉 장들에서도 저자만의 창작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가령 저자는 ‘완벽주의가 모든 것을 적당히 하는 것’이라며 경계한다. 창작은 시험이나 학교 과제처럼 만점이 있는 세계가 아니다. ‘점수를 매기는 세계가 아니라, 경지를 이루는 세계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글을 추구하면 밋밋한 글이 나오기 십상이다. 명작은 어떤 부분은 기이할 정도로 모자라지만 어느 부분은 놀랍도록 튀어나온 모습으로 완성된다.
‘소설을 쓸 때 메시지를 생각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논쟁에 저자는 ‘창작하기 전에는 메시지를 의도할 필요가 있지만, 창작하는 중에는 의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확히 정리한다. 소설에서는 강조해야 할 메시지, 혹은 윤리 자체보다 그것을 경험하고 체화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창작은 메시지를 진실로 체험하게 하며, 그런 체험이 일어나는 세계를 현실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세계를 살아 있게 만드는 방법은 오직 소설 전체 하나하나의 디테일이며, 그러기에 창작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메시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디테일만을 생각한다.”
작법도 이와 같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작법을 체화하되, 작품을 쓸 때는 잊으라고 당부한다. 걸작은 결국 작법에서 하지 말라는 짓을 할 때 나오기에. 걸작을 만드는 그러한 돌출과 변칙은 그저 순수한 몰입 한가운데, 지극의 확인과 무아지경에서 나오기에. 진실로 SF를 쓰려는 이들에게 저자가 기꺼이 나누는 지혜를 들어보라.
목차
시작하며
쓰기 전에
당신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장르가 있다
왜 내가 쓴 글은 잘 쓴 것 같을까
아이디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이처럼 공부하기
쓰기
SF 서사의 주역은 둘이다 — 인물과 설정
타인에게는 주관이 있다
세계는 이어져 있다
핵심을 틀려라 — 그리고 쓸데없는 것은 정확하라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이중 구조로 전달하기
독자의 기억력과 집중력을 배려하기
쓰고 나서
퇴고와 평가 듣기의 기술
악플에 상처받지 않는 법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여담
SF의 독법은 따로 있는가
‘아쉬발꿈’은 왜 사랑받지 못하는가
‘시각적인 묘사였다’
루틴
마지막으로
출처
주석
저자소개
책속에서
하나의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하면 되겠군!’ 하는 생각도 부디 내려놓으시라. 당신의 아이디어가 참신해 보이는 이유는 당신 삶의 맥락 때문이다. 타인에게는 그런 맥락이 없다.
<아이디어란 (도대체) 무엇인가>
SF는 오히려 현대사회의 지루하고 흔해빠지고 매가리 없는 인물 대신 개성 넘치고 다양한 인간상을 그려낼 수 있는 장르가 아니던가.
<타인에게는 주관이 있다>
공모전 투고작 중에는 “씨바아알!”로 첫 대사를 시작하는 주인공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그 말이 주인공을 눈에 띄게 하고 개성을 부여한다고 믿는 것 같다. 나는 “씨바아알!” 하고 포효하며 첫 등장을 알리는 주인공을 볼 때마다 이건 또 무슨 한국인 정신에 아로새겨진 원초적인 대사일까, 고민한다.
개성은 주인공의 눈에 띄는 몸짓과 울부짖는 괴성과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위협적인 주먹과 위험한 인간상 따위에서 오지 않는다. 개성은 대비에서 온다(어느 정도는).
<타인에게는 주관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