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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68224339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5-06-10
책 소개
목차
서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여왕은 마치 영혼이라도 꿰뚫어 보려는 듯 노란 매의 눈을 반짝이며 올랜도를 바라보았다. 청년은 여왕의 시선을 견뎌냈다. 그는 다마스크 장미처럼 얼굴을 붉혔다. 강인함과 우아함, 사랑의 기운과 어리석음, 시와 젊음. 여왕은 책을 읽듯 그를 읽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어(여왕의 손가락 관절은 약간 부어 있었다) 올랜도에게 끼워주며 그를 재무 담당자 겸 집사로 임명했다. 그다음에는 관직에 임명됐음을 증명하는 사슬을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으라 명령한 뒤, 다리의 가장 가느다란 부분에 보석으로 장식된 가터 훈장을 매주었다. 그 이후로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그 스케이터가 가까이 다가왔다. 다리와 손, 몸짓은 남자의 것이었지만, 입은 어떤 남자에게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가슴 또한 어떤 남자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깊은 바닷속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눈도 남자의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 정체불명의 스케이터가 멈춰 섰다. 그리고 시종들의 팔에 매달린 채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가던 왕에게 지극히 우아한 몸짓으로 허리 숙여 인사하더니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손만 내밀면 닿을 듯했다. 그는, 여자였다. 올랜도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몸이 떨려왔다. 갑자기 더워졌고, 또 순식간에 추워졌다. 여름 공기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올랜도는 첫 장을 펼쳐 서툰 필체로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1586년. 거의 3백 년 가까이 이 시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만 끝낼 때였다. 종이를 넘기고, 대충 살펴보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건너뛰며 원고를 읽는 동안, 올랜도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들이 대개 그렇듯 그녀는 우울했고, 죽음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런 다음에는 색과 화려함을 탐했고, 원기 왕성하게 풍자를 즐겼으며, 때로는 산문을 쓰고 가끔은 극본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를 거치면서도 자신은 근본적으로 여전히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울하고 사색적인 성격도,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도, 전원생활과 사계절을 좋아하는 열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