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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스페인/중남미소설
· ISBN : 9791168223844
· 쪽수 : 452쪽
· 출판일 : 2025-02-17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더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은 바로 누가 내 옆에 있는 것이었다. “제발 신경 끄고 집에나 가.”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너한테 신경을 안 써. 네가 하려던 걸 그냥 하게 내버려 두고 가버리면, 난 나를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나는 그녀를 옆으로 밀치고 계속 걸었다. 그녀를 떼어 놓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가 갑자기 내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더니 휙 돌아서서 뒷걸음질하며 내 얼굴을 보고 계속 말했다. “경고하는데, 뛰어내리기만 해 봐. 나도 뛰어내릴 테니까. 그러면 너는 내 동생 일곱 명이랑 불쌍한 우리 부모님한테 고통을 주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너한테 달렸어.” 비열한 수작이었다. “꺼져.” 이번에는 더 거칠게 쏘아붙였다. 나는 다시 그녀를 옆으로 밀치고 계속 걸었다. 몇 야드만 가면 폭포였다. 바로 그때, 엘프 공주인 줄 알았으나, 실은 마녀인 그녀가 갑자기 폭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대로 멈춰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전 카일 친구 미아예요. 카일 집에 있나요?” 현관을 박차고 뛰어나가 보니 악몽 같은 그녀, 즉 미아가 걸 스카우트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카일, 지금 막 네 부모님께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드리려던 참이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제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부모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어제 조시네 집에서 나오면서 카일이 며칠 떠나 있고 싶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엄마께서 봄 방학 때 스페인에 같이 가자고 초대하셨어요. 물론 허락해 주신다면요.” 아빠가 물었다. “아들, 진짜니? 정말 여행하고 싶어? 지금?” 아빠 목소리에서 살짝 희망이 묻어났다. “어서, 카일.” 미아가 끼어들었다. “어제 나한테 얘기했던 거 말씀드려.” 젠장. 이 여자아이를 떼어 낼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네….” 나는 입을 뗐다. “맞아요… 저 스페인에 가고 싶어요.”
미아가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사랑하는 나의, 생일 축하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미아가 너무나 연약하고 외로워 보였다. 미아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그 작고 약한 몸은 마치 해가 갈수록 상처가 더해진 지뢰밭 같았다. 이 순간까지, 나는 사실상 미아를 똑바로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분노 때문에 그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미아가 촛불을 훅 불어 껐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일 축하해, 아멜리아.”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계속되는 싸움에 지쳐버린 영혼, 심장이 멎을 만큼 침울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같았다. 나는 밖에 선 채 눈앞에서 문이 닫히는 걸 지켜봤다. 무기력하고,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뭔가 어렴풋하게 새로운 감정이 움트는 기분이 들었다. 맙소사, 내가 고통스럽다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렇게 외면하다니? 이건 내가 아니었다. 젠장. 이건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