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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발해
· ISBN : 9788952129130
· 쪽수 : 512쪽
· 출판일 : 2020-11-2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I부 남북국시대론
제1장 南北國時代論의 기초적 검토
1. 머리말
2. 발해사의 성격
3. 남북국시대 용어의 적절성
4. 삼국통일의 평가와 통일신라 용어의 사용 문제
5. 맺음말
제2장 남북국의 전쟁, 경쟁과 교류
1. 상식의 역사
2. 전쟁과 경쟁
3. 교류
4. 남북한과 남북국
제II부 국내외 발해사 연구
제3장 조선시대 史書에 나타난 渤海觀
1. 머리말
2. 발해사 인식의 변화 과정
3. 실증적 연구
4. 발해관의 변천과 그 계기
5. 맺음말
제4장 柳得恭의 생애와 저술
1. 머리말
2. 생애
3. 저술 및 문학론
4. 역사서
5. 역사 인식
6. 맺음말
제5장 柳得恭의 『渤海考』와 成海應
1. 머리말
2. 『渤海考』 필사본 비교
3. 成海應의 柳得恭 언급과 발해 지리 고증
4. 맺음말
제6장 북한의 발해사?통일신라사 연
1. 머리말
2. 삼국통일, 후삼국통일의 평가
3. 발해사에 대한 문헌 연구
4. 발해사에 대한 고고학 연구
5. 통일신라사 연구
6. 북한 역사 서술의 특징: 맺음말을 대신하여
제7장 일본에서 접근한 발해사: 酒寄雅志와 石井正敏의 저서를 읽고
1. 두 저서
2. 두 시각: 律令制 國家와 高句麗 繼承國
3. 남겨진 문제들
4. 공유와 교류
제8장 러시아 연해주의 발해사 연구
1. 머리말
2. 연해주 발해 연구의 여정
3. 한.러 공동 조사와 보고서
4. 이해의 심화를 위하여
5. 맺음말
제III부 중국의 동북공정과 발해사
제9장 중국의 한국 고대사 빼앗기 공작
1. 발해에서 고구려로, 다음에는 고조선
2.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大漢族主義’
3. 集安 회의 이후
4. 제2의 나당전쟁인가? 그리고 유네스코 등재가 시급하다
제10장 중국의 동북공정, 그 후
1. 머리말
2. 중국: 끝나지 않은 동북공정
3. 북한: 강화되는 주체사관
4. 남한: 국수주의와 탈민족주의 사이에서
5. 맺음말: 미래를 위한 반성
제11장 대외관계에서 본 발해 정권의 속성
1. 머리말
2. 朝貢과 冊封
3. 羈州와 長史
4. 疆域과 歷史: 맺음말을 대신하여
부록: 발해사 연구의 길
1. 발해를 찾기까지
2. 연구의 첫걸음
3. 고고 자료의 활용
4. 넓어지는 시야
5. 글자 하나의 힘
6. 만주로, 연해주로
7. 마무리하며
수록 논문의 출처
3부작에 수록하지 않은 발해사 논문
참고문헌
찾아보기
국문 초록
中文抄錄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렇다면 시대구분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독립된 두 나라가 존재했던 당시의 상황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뒤 한국사에의 계승성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이어 나타난 수나라가 북조를 계승한 국가였음에도 남북조시대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을 참조한다면, 전자의 기준을 가지고 남북국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반면에 삼국통일의 평가와 통일신라 용어 사용과 연계시킨다면 후자의 기준에서 다루어질 문제이다.
발해와 신라가 공존하던 시기를 南北國時代라고 한다. ‘통일신라와 발해의 시대’라는 용어보다 간단명료한 표현이다. 아마 우리 시대는 먼 훗날 ‘남북 분단의 시대’ 또는 ‘남북한시대’로 불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물론 1천 년 이상 차이가 나는 두 시대를 직접 비교하는 것에 반대할 수도 있다. 현재는 양자 모두 단일민족 의식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와 동일한 의식이 없었다. 그럼에도 상식의 면에서 두 시대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 단계에서 주로 고구려 계승에 초점을 맞추어 발해사를 인식하던 태도에서 한 걸음 나아가 발해를 당시 통일신라와 대등했던 독립국으로 다루거나 때로는 발해가 신라보다 우위였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단계에서는 두 갈래 흐름이 나타났으니, 하나는 삼국이나 통일신라와 대등하게 世家, 世紀 등으로 다루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국시대론을 주장하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는 이종휘의 『東史』가 선구를 이루었으며, 후자의 경우는 유득공의 『발해고』가 그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