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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경제학/경제일반 > 경제사/경제전망 > 한국 경제사/경제전망
· ISBN : 9788952228901
· 쪽수 : 198쪽
· 출판일 : 2014-06-01
책 소개
목차
1권
들어가며
자본주의를 시작하다, 미군정 시대
건국 대통령, 이승만 시대
경제민주화의 원조, 장면 시대
한국의 산업혁명, 박정희 시대
40년 인플레를 잡다, 전두환 시대
한국경제 일지(1945~1987)
주요 경제지표(1945~1987)
2권
들어가며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 노태우 시대
경제는 실패, 개혁은 성공, 김영삼 시대
위기를 극복하고 복지를 말하다, 김대중 시대
비주류 대통령, 노무현 시대
CEO 대통령, 이명박 시대
한국경제 일지(1988~2012)
주요 경제지표(1988~2012)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돌이켜 보면 건국 당시의 한국경제는 국제적으로 천덕꾸러기였다. 워낙 가난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아슬아슬한 붕괴 위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문가들 말대로라면 한국경제는 이미 망해도 여러 차례 망해야 했다. 선진국이나 국제기구의 충고를 무시하고 한국식을 고집한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오늘의 한국경제는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경제발전은 물론 정치 민주화까지 이뤄낸 점이 더 주목을 끌었다. 이런 한국경제가 개발도상국들에는 교과서로 통한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맞아 내로라던 강대국들도 한국 경험을 벤치마킹하는 데 서슴지 않는다. 과연 한국경제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는 막상 우리를 잘 모른다. 대학의 경제학과에서도 미국에서 유행하는 이론을 가르치기만 할 뿐, 제 나라 경제가 무슨 고초를 겪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는 관심 밖이다. 경제학을 전공하나 영문학을 공부하나 한국경제를 잘 모르기는 별 차이가 없다.
한국경제는 ‘사람’을 빼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원래 경제는 사람이 핵심이다. 더욱이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이 오로지 사람만을 유일한 밑천으로 삼아 오늘의 경제를 일궈냈다. 특히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건국 이후 한국경제의 발전과정을 논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경제치적을 시대별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한국경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04년 11월, 남미를 순방한 노무현은 칠레 산티아고 동포간담회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남미 여러 나라를 돌면서 왜 한국이 성공했을까 많이 생각했다. 옛날 지도자들이 실책을 더러 했지만 그래도 한가지씩은 다 했다. 자유당 시대를 독재시대, 암흑시대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당시 토지개혁은 정말 획기적이고 역사를 바꾼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토지개혁 덕분에 6·25전쟁이 터졌는데도 국가 독립과 안정을 지켜냈고 국민이 하나로 뭉쳐서 체제를 지켜냈다.”
노무현이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두고 한 말이다. 독재자로만 알았던 이승만이 알고 보니 토지개혁 같은 대단한 업적을 남겼더라는 이야기다. 남미 국가들의 토지 제도를 직접 보면서, 거기에다 한국 현실을 대입시켜 본 소감을 그렇게 피력한 것이다. 이승만의 토지개혁이 과연 어떤 정책이었기에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른 노무현 대통령이 이토록 칭송했던 것일까.
토지개혁은 북한이 남한보다 먼저 실시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3월, 소련군 주도로 다른 공산국가들처럼 모든 토지를 몰수해서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소위 말하는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한 것이다. 농민들은 일시에 소작농이 없어져서 환호했으나 땅 임자는 어디까지나 국가였다. 땅뿐 아니라 심지어 가축들까지도 국유화했다.
남한도 해방 이후 토지개혁(남한은 농지만을 대상으로 했다)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으나 개인의 재산권이 걸려 있는 문제인지라 시비가 많았다. 미군은 소련과 기본적으로 생각이 달랐다. 토지개혁은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유재산제도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태우는 다른 것은 몰라도 북방 정책에 관한한 뽐낼 만하다. 당시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는 외교적으로도 중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 가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노태우는 1989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재임 기간에 수교한 공산권 국가가 무려 37개국이나 됐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할 수 있었던 것은 노태우가 시대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고 북방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했던 결과였다.
사실 정부 안에서 조차 북방 정책을 둘러싸고 찬반이 엇갈렸다. 외무부(지금의 외교부)는 북방 정책에 적극적이었지만, 경제부처들은 소극적이었다. 공산국가들이 대부분 수교를 대가로 경제협력이라는 막대한 뒷돈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를 감당해야 할 경제부처들은 자연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태우가 “돈이 들더라도 공산권 수교는 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고수한 결과로 북방 정책은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