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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52241795
· 쪽수 : 688쪽
· 출판일 : 2020-02-14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기수들의 정돈된 이미지와 품위 있는 승마 공연은 흠잡을 데 없었지만 카드르 누아르의 생활은 정신적?육체적 평가가 끊이지 않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앙리 라샤펠은 날마다 기진맥진한 기분이 들었고, 강사들의 끝없는 지적과 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곡예를 망쳤다는 무력감 때문에 눈물을 흘릴 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태샤는 거의 매일 그런 애들을 보았다. 난민을 비롯해 문제아들, 쫓겨나거나 방치된 청소년, 칭찬이나 지지, 포용 같은 단어를 알 길이 없는 십 대들. 그런 아이들의 얼굴은 너무 일찍 철면피가 되었고, 그들의 마음은 철저히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도록 굳어져 있었다. 너태샤는 거짓말하는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애들, 성년이 될 무렵에 자라는 까칠하고 텁수룩한 수염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데도 열한 살이나 열두 살이라고 우기는 망명 신청자들. 하지만 진정성 없는 뉘우침과 비행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구조 속에서 그 애들이 범죄에 빠지기란 어렵지 않았다.
“소뮈르의 옛 친구 자크 바르쥐한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카드르 누아르에서도 이제 여자 둘을 받는다는구나. 지난 수백 년 동안 여자를 뽑거나 고려해본 적이 없었지. 근데 이제 뽑는다는구나. 군대를 다녀올 필요는 없어. 그냥 실력을 보여주면 돼. 이번이 기회야, 사라.”
할아버지가 너무 힘주어 말하는 바람에 사라는 약간 움츠러들었다.
“넌 능력을 타고났으니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어. 난 네가 인생을 허비하는 걸 원치 않는다. 네가 여기 남아 얼간이들과 어울리는 걸 보고 싶지 않구나. 그러면 결국 이 근방에서 유모차나 밀고 다닐 게 뻔해.”
할아버지가 말을 마치며 창문 너머 주차장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전…….”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가로챘다.
“이것밖에는 네게 줄 게 없단다. 내 지식과 노력.”
그러더니 환한 미소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검은 제복을 입은 우리 손녀, 어? 카드르 누아르의 여성 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