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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52769565
· 쪽수 : 370쪽
책 소개
목차
제1장 9(1권)
제2장 13(1권)
제3장 219(1권)
제4장 7(2권)
제5장 89(2권)
제6장 173(2권)
제7장 265(2권)
해설 나치 치하의 독일을 가로지르는 인간 군상의 파노라마 331(2권)
안나 제거스 연보 365(2권)
책속에서
발라우 선생이 붙잡혀 다시 끌려오자 많은 이들이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다른 동지들을 죽였던 것처럼 그들이 이제 발라우 선생도 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히틀러가 집권하고 나서 첫 달에 벌써 저들은 전국 각지에서 우리 지도부 수백 명을 살해했어요. 매달 많은 동지들이 죽었습니다. 일부는 공식적으로 처형당했고, 일부는 수용소에서 고문당하다 죽었어요. 한 세대를 완전히 말살한 겁니다. 발라우 선생이 잡혀 들어오던 그 무시무시한 날 아침에 우린 이 모든 걸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이 일들을 소리 내어 서로 얘기했지요. 우리가 이렇게 근절을 당했으니, 이렇게 초토화되었으니, 우린 후손도 없이 헛되이 죽어야 하나 보다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얘기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그때까지 없었던 일,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 일어난 일, 한 민족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무시무시한 일, 그 일이 바로 우리에게 닥치고 있다고 말이죠. 세대와 세대 사이에 무인 지대가 생겨, 앞 세대의 경험이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도 없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한 사람이 투쟁하다 쓰러지면, 다른 이가 깃발을 물려받아 싸우다 쓰러지지요. 그러면 그다음 사람이 그 깃발을 받아서 싸우다 또 쓰러집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받아 쥐려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린 발라우 선생을 데려올 때 양쪽으로 늘어서서 그에게 침을 뱉고 쳐다보던 그 젊은이들이 딱했습니다. 나치는 이 나라에서 자라난 최상의 것을 다 뽑아내 버린 겁니다. 아이들에게 그걸 잡초라고 가르치면서요. 저 바깥의 사내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모두 히틀러 청소년단을 거치고 근로봉사와 군대를 거치면서, 짐승에게 양육받아 자기를 낳아준 친어머니를 발기발기 찢어 먹은, 저 전설 속의 아이들과 같아졌던 것입니다. [1권 251~252쪽]
사람들을 선동해서 듣는 사람의 등을 타고 내려와 두 눈을 반짝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행진곡이다. 아주 오랜 추억과 완벽한 망각이 꼭 같은 조각들로 혼합된, 이 무슨 마술이란 말인가? 여기 이 사람들은, 독일 민족이 끌려들어 갔던 지난 전쟁이 행복한 모험이었으며 기쁨과 복지를 가져다주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군하는 병사들이 불사신의 아들이요 연인이라도 되는 양, 아가씨와 여인네들은 미소 짓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이 저 행진곡의 걸음걸이를 배우는 데는 두어 주일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 동전 한 푼 내줄 때마다 불안하게 또 당연하게 뭐에 쓸 건지 물어보는 어머니들은, 이 행진곡이 연주되는 한, 아들을, 또 아들의 일부분을 전쟁에 내어줘야 하리라. 그리고 음악이 잦아들면 그들은 묻게 되리라. 뭘 위해서였지? 대체 뭘 위해서였어? [2권 53~54쪽]
피들러 부부는 애초에 아이를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때는 실업자였고 게다가 아이 양육보다 다른 종류의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때 그들 부부는 믿었다. 지금, 부름을 받으면 곧장 길거리로 뛰쳐나갈 수 있도록, 자유를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그들은 자유로워야 하고 구속받지 않아야 한다고. 그때 그들 부부는 믿었다. 지금, 자기들은 대단히 젊으며, 나중에도 여전히 젊을 것이라고. 그때는 그 ‘지금’이 이 부부에게 아침처럼 비쳤고, 그 후일은 저녁처럼 생각되었었다. ‘지금’이나 ‘후일’이나 모두 꼭 같이 많은 것을 약속해주는 날이었다. 그들은 제3제국에서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갈색 셔츠를 입고 군인으로 훈련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2권 2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