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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소리 땅의소리

하늘소리 땅의소리

(어두움 덮인 인생길에서 듣는 하늘 이야기)

김운용 (지은이)
  |  
두란노
2010-06-08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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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소리 땅의소리

책 정보

· 제목 : 하늘소리 땅의소리 (어두움 덮인 인생길에서 듣는 하늘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53113558
· 쪽수 : 352쪽

책 소개

인생길에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없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그 너머에 수많은 눈물과 땀을 통해서, 그리고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고통의 자리를 딛고 일어섬을 통해서 주어진다. 문제는 어떻게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 책은 그런 인생의 거친 항해길 에서 어떻게 하면 참 소망을 주는 하늘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목차

서문
1부 땅의 소리 가득한 자리에서
1장 그대 같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2장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2부 가시지 않는 아픔 속에서
1장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2장 사람들은 그를 잊었더라. 그러나…
3장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4장 닫혔던 문이 열리기 시작할 때
5장 고집스러운 집중력으로

3부 하늘 소리 들려올 때: 파격, 은혜, 회복
1장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니
2장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3장 파격적인 은혜를 받은 이후
4장 재회의 기쁨과 두려움
5장 우린 반드시 함께 가야 합니다
6장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4부 하늘 사람들의 외침
1장 담쟁이가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다
2장 그날에도 경배하니라
3장 내 아들아 나도 안다
4장 샘 곁의 무성한 가지는 담을 넘고
5장 인생의 마지막 이야기들

5부 하늘 소리 들려오는 길목에서
1장 위로하여라, 내 백성을 위로하여라
2장 이제 우리가 그 청아한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3장 그건 사랑 때문에
4장 나의 달려갈 길 다 간 후에
5장 내 마음의 성소

저자소개

김운용 (지은이)    정보 더보기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와 신대원 과정(Th.B., M.Div.)에서 목회자 훈련을 받았으며 동 대학원(Th.M.)과 미국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Th.M.), Union Theological Seminary and PSCE(Ph.D.)에서 예배학과 설교학을 공부했다. 서울 서광교회, 미국 월돌프 갈보리한인교회, 여의도제일교회 등에서 담임목회를 했고, 한국설교학회 회장과 예배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예배학과 설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경건교육처장으로 학교의 예배와 경건교육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교수평의회 회장으로도 섬기고 있다. 또한 서울 동안교회 협동목사로 현장 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다음 세대를 세우는 설교』, 『현대설교코칭』, 『예배, 하늘과 땅이 잇대어지는 신비』(이상 장신대출판부), 『하늘소리 땅의 소리』(두란노), 『새롭게 설교하기』, 『사막에서 별을 노래하다』(이상 WPA)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설교학 사전』, 『예배학 사전』 및 2004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발간된 『예배와 설교 핸드북』(이상 WPA)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증언으로서의 설교』(토마스 롱, 공역), 『시대를 앞서가는 설교』(데이비드 버트릭), 『권위 없는 자처럼』(프래드 크래독), 『성례전: 하나님의 자기 주심의 선물』(제임스 화이트), 『현대주석 히브리서』(토마스 롱),『거룩한 예배』(단 샐리어즈),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스탠리 그렌츠), 『하늘이 주신 선물, 세례』(로렌스 스투키), 『실천과 저항의 설교학』(찰스 캠벨), 『예배, 소중한 하늘보석』(마르바 던) 등이 있고, 그 외 여러 편의 연구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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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서문]

긴 겨울이 지나가고 아름다운 봄기운이 서리면서 죽은 듯 서 있던 나뭇가지에는 싹이 돋아나고 꽃망울이 달려 있다. 그 춥고 길었던 겨울 들판에 서 있던 나무에 이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생명력 넘치는 푸르름이 넘실댈 것이다.
한 시인은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사실은 참 아프다”고,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 사실은 참 아프다”고 노래한다.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인의 통찰이 참 아름답다. 아름다운 꽃이 어디 그냥 피어나며, 인생의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인가? 그래서 시인은 “향기 속에 숨겨진 눈물이 한 송이 꽃이 되는 걸 너는 아니?”라고 물으면서 우리들 눈에는 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귀에 다 들리진 않지만 이 세상에는 아픈 것들이 참 많이 있다면서 “아름답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하다”고 들려준다.
인생길에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없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 너머에 수많은 눈물과 땀을 통해서, 그리고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고통의 자리를 딛고 일어섬을 통해서 주어진다. 문제는 어떻게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이다. 혹자는 부정적인 사고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자기 경영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코칭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기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서 삶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생길에 피할 수 없는 것이 고통과 아픔의 문제다. 그것들은 상실과 상처, 삶의 환경과 질병, 인간관계와 내적 혼돈, 생업의 현장과 가정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흔들고 가정을 흔들 때면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방황하기도 하고, 외로움에 사로잡혀 몸을 떨기도 한다. 가는 길이 너무 험하고 답답할 때, 이해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극한적인 절망의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찌할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혀 있을 때 헤쳐 나갈 힘이 없어 방황하고, 인생이 깨지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인생길의 고통의 문제는 성경의 중심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셔서 처음 인도하신 곳은 광야였으며,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후 첫 나들이 길로 택하신 곳은 풍랑 이는 바다 위였다. 그 어려움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고, 하늘 소리에 사로잡혀 살 것인가를 터득하게 하시려는 배려였고 훈련이었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된다. 노예로 팔려 이집트 제국에 던져진 요셉에게는 절망할 일로 가득했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에도 의연히 믿음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흥분되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제국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이집트 땅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던 땅이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인생이 망가지는 절망의 자리에서 수없이 터져 나왔을 한숨과 원망의 소리에 사로잡혀 살아갔을 시간에도 요셉은 계속해서 하늘 소리에 붙들려 걸어갔다. 그 소리에 사로잡혀 나아갔을 때 요셉의 생애는 하늘의 능력과 영광에 붙들린 인생이 되었다. 무성한 가지처럼 성공적인 인생이 되었고,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듯이 그가 받은 은혜를 수많은 사람들과 나누면서 자신도 살고 곁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함께 살려 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 우리 사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을 통해 많은 풍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는 만족을 모르는 탐욕에서 비롯된 소리와 모퉁이에 버려진 사람들의 절망의 소리, 심지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소리로 넘쳐 나고 있다. 그 땅의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흔들어 놓을 때가 있다. 특별히 고난의 문제가 부딪혀 오고, 답답한 환경에 서 있게 되면 우리의 귀청을 두드리는 소리는 늘 ‘땅의 소리’다.
그러나 칼 바르트가 고백한 것처럼 오늘도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친히 말을 걸어오신다. 그 말씀은 병든 육신도 고치고, 무너진 인생도 세우며,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삶의 상황도 바꾸며 넘어져 있는 사람들도 소생시키는 능력이 된다. “오늘도 말을 걸어오시는 하나님!” 그 ‘하늘 소리’에 사로잡혀 걸어갔기에 요셉은 인생이 망가지고 젊음이 짓밟히는 아픔 속에서도 우뚝 일어섰고, 넉넉히 승리하는 인생을 살았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각 곳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가 높아 가던 때에, 매주 목요일 아침에 목양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맡겨 주신 기독실업인회(CBMC) 한성지회 회원들을 위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계획한 바도 없었지만 권면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난으로 얼룩진 인생길에서 깊은 절망의 진흙 구덩이에 던져졌지만 부러울 정도로 의연했던 하나님의 사람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탁월한 능력이나 믿음의 수준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하셨다. 힘들고 어려운 인생길을 걸어가더라도 ‘하늘 소리’에 사로잡힐 때 가능한 역사였음을 깨닫게 해 주셨다.(중략)
지친 사람에게 섬이 되어 주고 무엇에든 흔들리지 않고 깨지지 않는 바위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구겨진 도시를 볼 때처럼 무섭게 가슴이 타는” 시인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목사가 가져야 할 모습이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모습이다. 우리도 한때 바위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고, 깨져도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모진 비바람이 불어오는 삶 속에서도 바위처럼 살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외롭고 힘들어도 그 굳건한 삶을 지켜 내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너무 힘들어서 지쳐 쓰러져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땅의 소리에 온 마음을 빼앗겨 유혹의 단맛에 깊이 빠져 있지는 않은가? 인생의 어떤 자리, 어떤 순간에도 “깊고 진하게….” 그렇다. 다시 하늘 소리를 들으며 일어설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셨던 말씀을 책으로 묶었다.
부디 이 작은 책을 통해 감옥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했던 요셉과 같은 굳건한 믿음의 삶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삶의 고통에 사로잡히고, 땅의 소리에 사로잡혀 암울한 골짜기를 방황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작은 책이 다시 이를 악물고 말씀 앞에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고난으로 얼룩진 인생길에서 다시 말씀을 부여잡고 걸어가도록 돕는 작은 지팡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지친 엘리야에게 들려주셨던 하늘 양식이 되고, 세미한 하늘 음성이 되기를 기도한다. 오직 우리가 구할 것은 한 가지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서만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In omnibus glorificetur Deus.


그런데 절망할 것 밖에 없는 바로 그 자리에 희망이 시작되는 한 사실이 소개되고 있다. “예수께서 그 누우신 것을 보시고...” 주님이 그 병자의 아픔으로 얼룩진 상황을 바라보신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주님이 나의 힘든 삶의 자리를 바라보신다.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내 삶을 지켜보고 계신다면 이길 수 있지 않겠는가? 더욱 거기에 소망이 솟구치는 말씀이 나온다. “아시고...” 그의 오랜 병고도 아셨고, 그의 절망도 아셨다는 말씀이다. 그의 눈물과 한숨도 아셨다는 것이다. 혼자서 울기도 너무 벅찬 그 아픔을 아셨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희망이 되는 말씀이 나온다. “이르시되...” 주님이 말씀하고 계신다. 그가 그곳에서 몇 년을 서성거렸는지 모르지만 절망할 것 밖에 없던 땅에 주님이 오심으로, 바라보심으로, 아심으로, 말씀하심으로 희망의 노래가 시작되고 있다. 주님 오심으로 우리에게는 희망이 시작되었다. 주님 오심으로 그들은 빛 가운데 거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흑암 가운데 있을 때, 죄의 늪에 빠져 죽어가고 있을 때, 진노의 사슬에 걸려 벗어날 방도가 없어 절망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신 분, 그리고 우리의 아픔과 절망을 아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분,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말씀해 주시는 분... 그것은 실로암 못가의 어느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야기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님이 거기에 찾아 오셨으나, 거기에 서계셨으나, 그들은 보고 계셨으나 그들의 눈물과 한숨을 다 알고 계셨으나, 문제는 그들이 주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이 그곳에 찾아오셨으나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물이 동하는 것에만 집중하느라고 예수님께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러한 곳에서는 결단코 희망의 노래는 들려오지 않았다. 절망의 노래로 뒤덮여 하염없이 시간만 가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찾아 오셨을 때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에게로 다가오시는 그 때도 사람들은 주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베들레헴에 찾아오셨을 때도, 베데스다에 찾아오셨을 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려고,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눈만 부라리고 있다. 희망의 근원이신 주님이 그곳에 찾아오셨으나 그분에게는 관심도 없다. 생명 주시려고 주님 찾아왔으나 사람들은 맞아들이지도 않았고 관심조차 없다. 자기 문제에만 집중하는 그곳에서는 주님은 아무 일도 하실 수 없다. 혹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믿음 생활이 무엇인가?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답답할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바로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절망이 서린 베데스다 그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었다면 한 가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물이 동하는 것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사람들의 움직임, 여론, 눈에 보이는 현상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거기에 계시는 주님을 주목하는 것이었다.

‘그대 같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에서


지금 요셉은 인생의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타까운 이야기로 가득한 인생길에 놓여 있다. 그런데 어디를 봐도 당황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불안해하고, 억울해하고, 답답해한 모습도 없다. 눈물, 한숨, 원망의 소리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런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말씀에 비해 창세기는 요셉의 감정 변화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의례적이다.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철이 없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이미 자포자기해 버린 상태였기 때문일까?
사실 요셉의 감옥 생활은 하루 이틀, 몇 개월이 아니었다. 그의 나이 17세 정도에 노예로 팔렸다고 보면, 보디발의 집에서 그런 총애를 받으려면 아마도 3~4년은 걸렸을 것이다. 그의 나이 20세 전후에 인정을 받았으나 곧 감옥에 갇히고, 풀려나서 바로 왕 앞에 선 나이가 30세였으니(창 41:46) 적어도 10년 가까이 감옥에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황금 같은 젊은 날의 거의 14년을 노예와 죄수로 보내야 했을 때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억울했을까?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나는구나 싶어서 절망할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누명을 쓰고 그 길고 긴 억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누구나 답답해하고 원통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왜 내 인생을 이렇게 철저히 망가뜨리시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부모 형제를 떠나 이방 땅에서 살아가면서 참 많이 외롭고 힘들지 않았을까?(중략)
감옥은 절망의 자리였다. 이미 망가진 인생인데 또다시 박살나는 자리였다. 요셉이 그런 자리에서 의연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감옥 가운데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이 더 큰 사랑으로 그를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감옥도 축복의 자리가 되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절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예비하신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는 교두보가 되었다. 만약 감옥에 갇히는 일이 없었다면 요셉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학교를 나와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도무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시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요셉이 감옥에 갇힌 시간 동안 하나님은 그곳에 함께 계셨고 역사하고 계셨다. 간수장에게 은혜를 얻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었다. 모든 일에 형통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었다. 고위직에 있는 두 사람과 같은 옥에 갇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었다. 친위대장의 배려로 그들의 시중을 들게 된 것도, 그들이 꿈을 꾼 것도, 그 꿈을 해석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진행되었다.
(중략) 하나님과의 동행이란 것이 별거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순간순간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가는 것이고, 그분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다. 나 혼자 갈 수 없는 길,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 가운데 서 있을 때 그분을 부르며 그분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동행이다. 거기에 함께 계심을 확신하면서 힘들 때마다 아뢰는 것이고 답답할 때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동행이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내놓고 의논하는 것이 동행이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되는 외로운 시간에도 거기 계시는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 동행이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 외롭고 억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 힘든 삶의 자리를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삼았다. 아버지 집에서 편안하게 살 때는 알지 못했던 놀라운 믿음의 차원을 그곳에서 터득한 것이다. 요셉에게는 뒤를 돌봐 줄 후견인도 없고, 도움을 줄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외롭게 혼자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우뚝 서 계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요셉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성경은 이것을 강하게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았던 고향집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안락한 정원에서 그를 몰아내시고 이집트의 노예의 자리로 떨어지게 하셨다. 요셉은 비록 노예로 전락했지만 성실하게 노력하여 인정도 받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거기에 만족하며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기수가 되어 감옥으로 떨어지고 만다.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거기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더 깊은 교제 가운데로 들어갔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이 있기에 그는 감옥에서도 의연히 나아갈 수 있었다.
나를 친구 삼으신 주님과의 동행, 그리고 그분과의 교제에서 오는 기쁨, 요셉은 그 ‘기쁨’을 알았다. 동행하는 사람이 받는 기쁨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주님과 나만이 아는 그 깊은 교제에서 오는 기쁨. 그 기쁨이 정말 크고 놀라워서 밤 깊도록 주님과 교제하는 동산 안에 있기를 원하지만, 할 일이 많은 세상으로 내려가서 이 동행의 축복을 전하라고 등 떠미셔서 가까스로 발길을 돌리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이 무엇인가?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주님과의 깊고 깊은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 터질 듯한 감격을 맛보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오늘 삶의 자리의 어려움이 어찌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주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고 있기에 오늘 고난의 자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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