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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 :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열린다 비유 :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류모세 (지은이)
  |  
두란노
2011-03-02
  |  
12,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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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다 비유 :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책 정보

· 제목 : 열린다 비유 :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성경의 이해
· ISBN : 9788953114975
· 쪽수 : 220쪽

책 소개

'열린다 성경'에 이은 '열린다 비유' 시리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으로 불리는 세 명의 ‘주연’과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신원불명의 여행객을 ‘조연’으로 하는 드라마 형태를 띠고 있다. 예수님 시대의 지리적 상황 및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의 역사적, 종교적인 관계에 기초해 마치 추리 소설을 쓰듯이 흥미진진하게 비유를 설명하고 있다.

목차

01. 율법사는 과연 누구인가?
율법사의 사회적 위치와 파워

02. 율법사는 왜 예수님께 질문했을까?
토론, 두 랍비가 벌이는 총성 없는 결투

03. 율법사는 왜 영생에 대한 질문으로 맞장토론을 제안했을까? 66
율법의 대강령, 쉐마 이스라엘

04. 율법사는 왜 ‘이웃’에 대해 물었을까?
이웃의 정의와 한계

05. 강도는 왜 여행객을 두들겨 팼을까?
여리고 길, 강도들이 우글거리는 우범 지역

06. 사회지도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왜 여행객을 외면했을까?
제사장을 얽어매던 정결법 규례

07.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왜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웠을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갈등 변천사

08. 구전율법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동을 어떻게 정죄할까?
구전율법에 대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상반된 관점

09. 사마리아인이 왜 영웅으로 등장했을까?
사마리아인이 보여 준 초월적인 사랑

10. 예수님은 왜 “네 이웃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을까?
이웃 개념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저자소개

류모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직 ‘선교’ 오직 ‘말씀’을 푯대로 하나님께 붙잡혀 산 그에게 아직 달려가야 할 길, 주께 받은 사명이 남아 있다. 한의사, 이스라엘 선교사를 거쳐 그는 이스라엘 선교와 회복을 알리는 문서사역자이자 성경을 사랑하는 이 시대의 성경교사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남은 사명을 감당하되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고 찾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 선교사 된 정체성을 가진 사명자로서 오늘도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저서로 《열린다 성경 난해구절 1》(규장), 《열린다 성경》 전 7권, 《열린다 비유》 전 3권, 《이슬람 바로보기》, 《유대인 바로보기》,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구약편 전 6권(두란노), 《체질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고려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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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강도들이 우글거리는 우범 지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
다가 강도를 만나매”(눅 10:30).

‘예루살렘’과 ‘여리고’ 하면 현대의 성경 독자들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하고 친근한 도시지만, 실제로 이 두 도시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두 도시 간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이 길이 당시 무엇으로 악명 높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치 미국 사람이 한국의 소설을 읽으며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다가’라는 구절을 읽을 때 받는 느낌과 비슷하다.
당시 청중들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저리며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잇는 이 길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강도들이 우글거리는 우범 지역’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주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그는 본격적인 출정에 앞서 선발대를 보내 도로 주변에 있는 강도들의 소굴을 먼저 소탕해야 했다.
주후 11세기 이후 2세기 동안 유럽의 십자군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도 예루살렘과 여리고를 잇는 길은 순례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강도들의 온상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십자군 왕국은 이 도로의 중간 지점에 요새를 만들었고, 이로써 강도로부터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안전한 여행을 도울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게 각색해 보면 아마도 이러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이 뉴욕 맨해튼의 할렘 가 뒷골목을 걸어가다가….”
해발 600~800m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해발 250m에 위치한 여리고로 가는 길은 1km의 고도차를 현기증 나게 느끼며 가파르게 내려가야 하는 27km의 길이다. 이 정도의 거리는 당시로서는 나귀를 타거나 걸어서 갈 수 있는 하룻길에 해당한다. 지금은 차를 타고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급격한 고도차로 인해 웬만한 사람들은 비행기의 이착륙 시에나 느끼는 귀가 멍멍해지는 현상을 체험한다.


강도 만난 무명의 여행객은 유대인일까, 이방인일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등장하는 첫 번째 인물은 한마디로 무명의 여행객이다. 스토리텔러이신 예수님은 그 사람의 이름도, 직업도, 그 어떤 것도 밝히지 않고 있다. 여행이 목적인지, 사업이 목적인지, 아니면 제사장과 레위인들처럼 종교적인 목적인지 우리는 아무도 이 무명의 여행객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여행객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은 잠시 뒤로하고, 일단 우리는 최소한 그가 유대인인지, 아니면 이방인인지부터 가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비유 해석가들은 이 여행객이 유대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토리의 전개상 당연히 유대인일 것이고 굳이 유대인임을 밝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객석에 무심하게 앉아 있는 유대인 청중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비유의 수사학적 기법을 고려해도 이 여행객이 유대인일 때 더욱 설득력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이 여행객이 강도를 만나 완전히 나체로 발가벗겨진 채 버려졌기 때문에 ‘할례 자국’이 보였을 것이라는, 약간은 지나치다 싶은 해석을 덧붙이기도 한다.
비록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이 여행객의 신원과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가르치고자 하신 교훈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연막 작전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내가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이웃의 한계를 제한하지 않으셨다. 내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민족, 인종, 종교, 성별 등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초월적인 사랑과 인류애를 가르치기 위해 이 사람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이 여행객이 유대인인지 아니면 이방인인지를 밝히는 일은 무익한 논쟁일 수 있다.


사마리아인의 유래
역사적으로 본다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정체성은 아래와 같은 변천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었다.

통일 왕국시대: 이스라엘인
이때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구분이 없었다. 우리나라도 남한과 북한이 나뉘기 전에는 한국인(또는 조선인)으로 불렸던 것과 같다.

분열 왕국시대: 북왕국은 북이스라엘인, 남왕국은 남유다인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왕국이 분열되면서 변화가 뒤따랐다. 북왕국은 ‘북이스라엘인’, 남왕국은 ‘남유다인’으로 불린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남북이 나뉜 후 남한 사람, 북한 사람으로 불린 것과 같다.

남북 왕국 멸망과 포로기 이후: 북왕국은 사마리아인, 남왕국은 유대인
남북 분열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민족의 동질성은 점차 희석되었다. 동질성을 잃어버린 하나의 민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서로를 향해 경멸과 무시를 표출하게 된다. 이런 적대감이 표출된 것이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이란 호칭이다. 결국 유대인들의 경멸적인 뉘앙스가 숨겨진 ‘사마리아인’이라는 호칭은 가치 중립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북이스라엘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가 북이스라엘 토착민과 앗수르 이주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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