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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보니 함께였다

떠나 보니 함께였다

(예수와 함께 떠난 자전거 광야 여행)

문종성 (지은이)
  |  
두란노
2014-05-12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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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 보니 함께였다

책 정보

· 제목 : 떠나 보니 함께였다 (예수와 함께 떠난 자전거 광야 여행)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20419
· 쪽수 : 324쪽

책 소개

신앙생활의 쳇바퀴를 돌며 만족했던 한 젊은이가 진짜 신앙을 찾기 위해 스스로 광야를 찾아 두 바퀴 자전거에 오른 이야기다. 자신의 남은 생애 중 십일조에 해당하는 7년을 하나님과 단 둘이 보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목차

prologue 하나님 없는 하나님의 일
차가운 땅의 따뜻한 위로
기도, 그 환상적인 응답
폭우를 가른 섬김의 라이딩
어느 시골 교회의 오르간
당신의 사막에도 꽃이 피길
한여름 밤, 사막에 떨어진 기적
어린아이 손에 담긴 사랑
어느 가난한 날의 일기
결국, 하나님의 사랑
진흙 쿠키 먹는 슬픈 천사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
산골에서 만난 애틋한 남매
창조주의 걸작품을 마주하다
예수님 사랑의 세 가지 원칙 1
예수님 사랑의 세 가지 원칙 2
생명은 뿌리에 있다
잉카를 태운 자전거
우리의 신은 누구인가?
고원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땅에서 밀려난 '땅의 사람들'
누가 배고픈 강도에게 돌을 던지랴?
말씀이 삶이 되는 사랑
버려진 아이들의 희망의 노래
아마존 밀림에서 만난 친구, 또바 족
광야, 믿음의 모험
모기장을 들고 GO!
희망 소년, 조지의 꿈
하나님의 무대에서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다
향기를 남기고 떠나라
렌들레 족과 함께한 선교 캠프
커피 한 잔의 나비 효과
새벽 별을 따라 산에 오르다
그 땅, 그 밤의 고백
포기할 수 없는 사명
어느 선교사의 뒷골목 복음전도기
복음을 사랑한 사람들
어느 눈 먼 사랑
오지에서 만난 믿음의 동역자
누구를 위하여 색소폰은 연주되나?
죽음이 눈 앞에 있었다
사랑은 빵이다
포용의 미학
5,419m의 안나푸르나 서킷
나누고 싶은 말
감사하는 삶
하필, 그 하나님의 세밀한 때
epilogue 절망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저자소개

문종성 (지은이)    정보 더보기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섭리를 좇아가고자 몸부림치는 실천적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개혁주의를 외치면서도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 인간이기도 하다. 7년 동안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면서 온몸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고, 그 은혜와 소망으로 현재는 오륜교회에서 서툴고 사랑스러운 청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다. 누구나 빈틈이 있어야 매력적인 법. 못난 매력이 물씬 풍기는 ‘동급 최강 허당 그리스도인’임을 자부한다. 『떠나 보니 함께였다』(두란노)를 포함해 6권의 여행기를 집필했다. 이메일 vision-ma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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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프롤로그]
7년 2개월, 112개국, 인생의 십일조로 드린 '자전거 광야 여행'. 살아 돌아왔다. 믿을 수 없는 여정이었고, 믿기 힘든 감격이었다. 막연하게만 꿈꾸었던 세계 일주였지만 나의 '자전거 비전 트립(vision trip)'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로 나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 세계 오지와 빈민촌 선교지를 탐방하며 앞으로의 사역을 위한 배움을 여는 것이었다. 먼저 왜 이렇게 길고도 긴 여행을 떠나야 했는지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고3을 포함한 중·고등부 때는 물론 대학부 시절, 주말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갔다. 가서 주일에 있을 예배와 여러 행사들을 바삐 준비했다. 대학부 공동체에서 누구보다 부끄럽지 않는 헌신이라고 자부할 만한 그런 신앙생활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건 놀라웠고, 행복했다. 그것은 나의 존재 이유였다. 뜨거운 심장으로 공동체를 섬기고 있었고, 제법 인정받는 경건의 모양을 취하고도 있었다. 교회에서 밤을 새우면서 예배를 준비하고, 성가대에 빠져 본 기억조차 희미하며, 스물넷의 나이에 목사님을 대신해 청년들을 이끌고 단기 선교를 다녀오기도 했다. 새벽 예배에도 열심이었던 까닭에 출석상도 받았으며, 리더로도, 임원으로도 섬겨 봤다. 골수 야구팬임에도 불구하고 관계 전도를 위한 축구 모임에 늘 참여하고 형제들과 울타리 없는 삶의 교제를 통해 진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청년들을 만나기만 하면 교회, 교회, 교회에 미쳐 살고 오직 교회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안에 의문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세수하다 본 지친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은혜였다. 문득 내 안에 조롱 섞인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식으로 점철된 네 신앙에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말이 되지 않았다. 나만큼 교회 생활 잘하는 청년 있으면 나와 보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다. 내 마음, 내 시간, 내 물질 다 드려서 주님의 일을 하는데 어느 누가 나를 저울질할 수 있다는 걸까?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사실은, 그래, 제대로 허를 찔렸다. 은밀한 내 비밀이 벌거벗겨진 느낌이었다. 충격이었고, 또 낭패였다.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하나님을 기만하지 마라!'
인정해야 했다. 내게는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듯 나 또한 말씀을 통한, 그 말씀이 생기 있게 내 삶에 적용되는 그런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늘 꿈꿨다. 그런데 내 안에 치명적인 위선이 있었다. 그것이 영적 숙주로 잠식해 심각한 죄를 범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을 못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안 만나고 있었다.
"주님! 제가 전도를 위해서 지금 바삐 준비해야 하거든요. 잠시만 비켜 주시겠어요?"
"주님! 제가 예배를 위해서 지금 급하게 할 일이 있거든요. 나중에 만나 주시겠어요?"
"주님! 제가 일단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난 다음, 여유가 생기면 그때 제 것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잘되게 좀 해 주실래요?"
모든 생각과 행동에 '내'가 먼저 나왔다. 성령을 가벼이 여기고 있었다. 하나님을 경홀히 대하고 있었다. 영혼은 곤고해져 갔지만 나는 임시 처방전으로 버텨 나갔다. 그것은 나에 대한 지체들의 태도였다.
"종성 형제, 이번에도 멋지게 일을 해냈군요. 역시 형제님밖에 없어요, 대단해요!"
지나친 칭찬이 독약으로 변질될 때까지도 그 쾌감을 놓칠 수 없었다. 결국 외식하는 기도와 말씀으로 그럴듯하게 각색된 내 교만은, 부지불식간에 영적 균형을 흐트려 놓았다. 혼자 있을 땐 하나님 없이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 여럿이 있을 땐 하나님 이용해서 교묘하게 나를 돋보이게 하는 행동……. 얄팍한 술수로 하루하루 버텨 나갔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것에 더욱 중독되어 갔다.
그러나 이내 분명하게 드러났다. 교회에서 청춘을 한 점 남김없이 불살랐던 나의 가장 어리석은 죄는,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핑계로 하나님을 기만하는 태도였다. 각성이 필요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싶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묵상에 몰두했다. 말씀이 새롭게 읽혔다. 전에는 성경책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범사에 잘되고 모든 일에 축복해 주실 거란 달콤한 격려와 위로를 전해 주던 책으로 보였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내가 알고 있던 복은 그 복이 아니었다. 나를 뜨끔케 했던 성경에서의 복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데, 복음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을 거냐고 묻고 있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그랬고,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제자들이 도망가는 장면에서 그랬다.
또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에 대해 산상 수훈과 서신서들은 탁월한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그 말씀은, 몹시도 편안한 신앙생활을 기쁘게 해 나가던 내게 심각한 도전이었다. 덕분에, 그렇게 살지 않고 있음에 대해 쓰라린 회개를 해야 했다.
적나라한 위선이 드러나면서 영적 회복을 기도하던 어느 날, 나는 한 단어에 그만 마음을 뺏겨 버리고 말았다. 침대에서 뒤척이며 새벽녘까지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었던 그 단어는 '광야'였다. 광야…….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성경 속 인물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게 만났던 곳, 그래서 더욱 선명한 하나님의 임재를 말씀 가운데 경험했던 곳, 맞다. 나에겐 광야가 필요했다.
'말씀대로 살기란 어렵다. 그러나 말씀 없이 살기란 더욱 어렵다.'
떠나기로 했다. 진짜 벌거벗겨진 광야에 직접 가 보기로 했다. 지금 하나님을 깊게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퇴행적 '선데이 크리스천'의 삶을 살게 빤해 보였다. 교만한 이에겐 '하나님인가, 세상인가'를 선택하는 것보다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일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교만은, 하나님의 주변을 떠나는 대신 그 상황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하나님과 더 이상 친밀해지지는 못하게 한다. 이것은 치명적인 영적 유기이다.
사회적인 위치, 앞으로의 미래,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하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보다 확실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들 또한 확실하게 고백하고 싶었다. 1년을 준비했다. 매주 대학부 공동체에 기도를 부탁했다. 믿음이란, 내 몫을 확보해 놓은 다음 나머지를 생색내듯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진리의 말씀, 오직 그것 하나에 순전하게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이 믿음을 확인하는 삶의 단계에는 중요한 두 가지 점검 장치가 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에베소서 5:10)과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마가복음 12:31)이다. 전자는 구원이라는 값없는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의 태도이고, 후자는 예수님께서 강조한 가장 큰 계명이다.
2006년, 대사관 인터뷰를 통해 미국 비자를 취득했고, 나는 남은 인생의 십분의 일을 광야에서 하나님과 홀로 독대하며 보내기로 했다. 물론 주님께서 만나게 하실 이들과의 만남 또한 기도로 준비했다. 광야를 헤쳐 나갈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자전거였다. 단순한 이유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심장과 두 다리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고 싶었다. 또한 전 세계 오지와 빈민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만나고자 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싶었다. 자전거로 곳곳을 다니면서 보고, 만나고, 배우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에 흠뻑 빠지는 은혜를 누려 보고 싶었다. 기대가 되었다. 머리로만 알던 성경 지식이 광야에서 날것으로 부딪히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일에는 열심이지만 정작 하나님 만나는 일이 너무 힘겨워져 버린,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청년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혹시 어떻게 될지 몰라 장기 기증을 신청했다. 보호자 동의를 부탁할 때, 평소엔 그렇게나 밝으시던 어머니께서 한참 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셨다. 자식 된 도리로써 가슴에 못을 박는 건 아닌지 죄송했지만 어차피 잘못되는 경우라면 내 몸 하나 아낀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 싶었다. 죽어야 할 나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신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 믿음의 행함에 있어서는 유독 주저함과 절제함이 많았다. 가스펠 가사처럼 삶의 한 절이라도 주님을 닮았던 적이 없었으니 아주 조금 철이 들었을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실행해 보고 싶었다.
늦은 가을 밤, 대학부 지체들이 하나둘 교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의 오랜 광야 여행을 위해 기도해 주기 위해서였다. 치열했던 하나님의 사역을 내려놓고 이제야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된 이 아이러니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광야에선 영적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광야에서의 말씀의 생기가 나를 압도해 주길 기도했다.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오랜 여행길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눈을 끔뻑이며 낯선 곳에서의 첫 걸음을 시작했다. 눈과 얼음밖에는 보이지 않는 곳, 알래스카. 드디어 길고 긴 광야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도 모르게 '아멘'이 터져 나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나무들과 꽃들, 구름들과 별들에도 기록하셨다."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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