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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교회 > 교회교육
· ISBN : 9788953125803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6-06-2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PART 1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 하나님의 방법 하브루타
01 듣고 바로 잊어버리는 한국교회
02 신앙을 지킨 유대인의 저력은 하브루타에 있다
03 신바리새인에서 벗어나 지키고 행하게 하라
04 교회 하브루타, 이렇게 적용하라
PART 2
교회에 적용하는 말씀 토론 하브루타
05 우리 교회를 살린 하브루타
06 조용하지만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 하브루타
07 하브루타 시작, 이렇게 하라
08 하브루타 내비게이션
09 하브루타 성장판을 자극하라
10 하브루타 교사가 지켜야 할 것
11 하브루타 정착을 위한 전략
부록 1_ 궁금해요, 하브루타 Q&A 188
부록 2_ 누림교회 꿈지락 성경 하브루타 노트 200
리뷰
책속에서
유대인은 어떻게 신앙을 전수해 왔는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지 3400년가량이 지났다. 유대인은 이방 전도를 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오직 자기 민족에게만 신앙을 전수한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더구나 3400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나라다운 나라를 가진 것은 불과 50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사울에서 시작된 왕국의 역사가 450년쯤 되고, 주전 586년에 남유다가 망했다가 1948년에야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졌으니 말이다. 나머지 2900여 년은 식민지 상태였거나 나라 없이 떠도는 처지였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로 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아야 했다. 떠돌아다니는 중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박해와 핍박의 시련을 겪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신앙을 전수할 수 있었다니, 그 저력이 놀랍기만 하다. 더구나 그들은 현재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이 지대한 큰손이거나 석학이거나 인재로서 활동한다.
과연 그들의 저력은 무엇인가?
나는 그들의 저력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행한 데 있다고 본다. 특히 그들의 문화 깊숙이에 자리 잡고 있는 하브루타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본다.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 토론, 논쟁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하브루타는 유대인 전통 교육기관인 예시바에서 둘씩 짝지어 성경이나 탈무드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넓게 보면 유대인 문화는 그 전반에 하브루타가 깊이 내재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태교를 태담으로 한다. 태담은 태아와 산모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하브루타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베드타임 스토리, 즉 베갯머리 교육을 한다. 이것 역시 하브루타다. 무엇보다 매주 안식일 식탁을 갖고 3-6시간 동안 가족 간에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그들은 안식일 식탁이 아니더라도 가정, 학교, 직장, 심지어 군대에서도 치열하게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한다. 하브루타가 유대인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된 것이다.
가족끼리 대화를 하기 때문에 유대인 가정은 행복하다. 더불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성경을 가지고 끊임없이 하브루타를 하다 보니 신앙이 자연스럽게 전수된다.
그럼 하브루타가 왜 유대인 문화가 되었는가?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들어 그대로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 말씀을 신명기 6장 4-9절로 삼았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를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해 왔다. ‘네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며’가 유대인의 행동 강령이 되었고, 그 방법이 강론, 즉 ‘talk about’ 하는 것이었다.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구체적 방법이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하는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3400년 동안 자녀에게 성경 이야기로 대화를 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성인들도 예시바에서 둘씩 짝지어 토라와 탈무드를 가지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끊임없는 ‘듣고 잊어버리고’로 젖먹이 신앙 양산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면서 한국교회에서 ‘듣고 잊어버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수십 년 교회를 다녀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크리스천을 만들지 못하는 병폐가 되었다. 즉 성화하고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양육하지 못하고 젖먹이 신앙에 머물도록 만든 것이다.
선포 형태의 설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문제다. 성경은 분명하게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라’고 명령하고 있고, ‘너는 내 앞에 완전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설교 를 내 것으로 만들어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에 없는 것이 바로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드는, 마음판에 새기는 내면화 과정이다. 지상 명령으로 말하면 ‘가르치기’는 하는데, ‘지키게’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내면화가 되어야 실천과 행함이 가능하다. 자기 내면화는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소수의 그룹이 말씀을 가지고 치열하게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고 대화할 때 가능하다.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다니고, 수도 없이 설교를 듣고, 여러 번 성경을 읽는데, 왜 우리는 성경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까?
설교를 듣고 잊어버리고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되어 버렸다. 분명히 우리는 성경 말씀을 듣고서 잊어버리기 위해서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성경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부르짖고 있고, 하나님은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라고 명령하셨는데, 우리는 주일에 한 시간 정도 교회에 앉아 있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했다고 여기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고, 이 관계성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이뤄진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일방성만 넘치고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해 보자. 예수님은 이 땅에 진리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지만, 사복음서 중에 산상수훈 외에는 대부분 쌍방의 대화와 토론과 논쟁을 하셨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설교하시지 않고 대화를 나누셨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설교하신 것이 아니라 영혼을 깨우는 대화를 나누셨다. 제자들과는 청중에게 이야기한 내용으로 토론을 하셨다. 바리새인과 율법사, 서기관들과는 주로 논쟁을 하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상대방의 상황이나 필요를 아시고 상대방에게 철저하게 공감해서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셨다. 성부 하나님도 ‘너희들 나랑 얘기 좀 하자, 따져 보자, 변론 좀 하자’ 등으로 말씀하셨다.
신앙이 무엇인가? 신앙은 하나님과 나의 쌍방향 관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믿음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에 나와 한 시간 예배를 드리면 구원 받는다는 말씀은 없다. 또 예배란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없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씀에도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왜 그런가?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을 교회에 다니는 것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면 저절로 예수가 믿어지는가? 우리는 마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보험을 들어 놓는 심정으로 일주일에 하루 교회에 앉아 있어 주는지도 모른다.
또 교회에 가서 예배드린다면서 관람하다 오는 경우가 많다. 목사의 설교와 찬양단의 찬양을 관람하다 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들면 그 교회에 다닌다. 여기에는 수동적인 자세로 말씀을 듣고 오겠다는 전제가 있다. 예배드리는 것을 그저 수동적인 자세로 말씀 듣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설교를 쇼핑하는 것이 신앙생활인가?
당신은 지금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한국 문화가 질문을 하지 않고 일방 통행의 문화이다 보니 하브루타를 교회에 정착시키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목회자부터 잘되지 않는다. 성도들이 질문하면 따지는 것 같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들린다. 따라서 누구보다 목회자가 하브루타가 하나님의 방법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 하브루타가 몸에 배도록 실천해야 한다. 하브루타의 위력을 알게 되면 탄력이 붙어서 곧 자연스러워진다.
목회자가 많은 교회라면,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부목사 등이 모여 성경 본문을 가지고 하브루타를 진행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 다음 부목사와 교회교육 담당 목회자가 소속 교사들이나 중직자들과 함께 하브루타를 진행하는 식으로 범위를 넓혀 가면 좋을 것이다. 목회자가 몇 명 안 되는 작은 교회라면 몇몇 교회의 목회자가 모여 성경 본문을 가지고 토론하는 하브루타를 진행하고 서서히 교회에 접목하면 좋을 것이다.
목회자들끼리 하브루타가 이뤄지고 목회자와 교사들이 하브루타가 되면, 이제 교사와 학생들 간에 하브루타를 시작한다. 교회학교에 하브루타가 정착되면 아이들은 가정에 가서도 성경 말씀을 가지고 부모와 토론하려 들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질문과 토론에 호응하면 가정에서도 하브루타가 이뤄지게 된다.
하나님은 교인의 숫자가 많은 것으로 기뻐하시지 않는다.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고민하고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시대가 흉포했던 엘리야 때에도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 7천 명을 준비시키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그런 한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이 교회교육이 할 일이고 목회자와 교사가 해야 할 의무다.
하브루타를 예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오후예배나 저녁예배 때 성도들끼리 짝을 지어 정해진 성경 본문을 가지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다. 성경 본문은 교회 상황에 따라 오전예배에서 선포된 말씀으로 해도 되고, 다음 주의 설교 본문을 가지고 해도 좋다. 또는 창세기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는 방법도 있다. 질문은 성도들이 직접 만들어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므로 목회자가 여러 개의 질문을 만들어 그중에서 취사선택해서 하브루타를 하도록 한다. 실제로 많은 교회가 오전예배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드리고 오후예배는 하브루타로 말씀을 나누고 있다.
대전 새김교회의 경우 토요일에 성경학교와 주일에 주일학교, 그리고 평일에 가정교회의 3단 구성으로 시스템을 체계화했다. 먼저 부모를 교육하여 가정 하브루타가 이뤄지도록 하고, 주일학교에서는 1주 암송, 2주 내용 분석 하브루타, 3주 적용 하브루타, 4주 모든 공동체가 말씀 적용 실천하기로 구조화해서 하브루타를 실천하고 있다. 설교도 말씀 선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 후에 질문을 만들어 토론을 하고 있다.
광주 하브루타선교회의 경우, 여러 차례 하브루타 세미나를 열어 서원교회, 복지교회, 영락교회 등이 오후예배 때 성경 하브루타를 실천하도록 돕고 있다. 이들 교회는 하브루타를 실천한 뒤로 교인들 간에 대화와 나눔이 활발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브루타가 교회와 가정 전반에 정착이 되면, 설교 시간에도 둘씩 짝을 지어 하브루타를 할 수 있다.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고 토론하고 논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말씀이 흥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