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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42398
· 쪽수 : 252쪽
· 출판일 : 2022-06-22
책 소개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1장 고민의 시작
1 지구 나이는 정말 46억 년일까?
2 이 불완전한 세계를 신이 창조했다고?
3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라고?
4 하나님은 선하신데 왜 세상은 악할까?
이슈 체크 | 화석이 오랜 진화 역사의 증거?
2장 현실의 관점
5 진화론이 온 국민의 상식이 되었나?
6 어떤 관점으로 사고할 것인가?
7 온 세상의 창조주는 교회에만 계신 걸까?
8 성경은 구원의 책일 뿐 과학책은 아닌 건가?
이슈 체크 | 복음이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3장 진화의 실체
9 빅뱅, 우주가 스스로 탄생했다고?
10 검증되지 않는 이론에 인간론을 맡길 것인가?
11 생명의 자연발생이 증명된 적이 있던가?
12 우리가 네 발로 걷는 유인원 조상의 후예라고?
13 쌓여 가는 돌연변이는 진보인가, 퇴보인가?
이슈 체크 | 창조론, 진화론 둘 다 과학인가?
4장 기원론의 오류
14 과학, 왜 창조 대신 불가능을 택했나?
15 진화론은 세속적 인본주의를 떠받치기 위한 이론인가?
16 파멸적인 사회 이론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17 복음과 진화론은 한 길을 갈 수 없다
이슈 체크 | 기원에 있어 최고의 증거는 무엇인가?
에필로그
주(註)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지구 나이는 정말 46억 년일까?” 중에서>
고생물학을 배우는 동안 풍부한 진화의 증거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화석 자체가 창조나 진화 어느 한쪽을 증명해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공부를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생물학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화석 생물들을 분류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각 생물 종마다 독특한 이름을 붙이는데, 이를 학명이라고 한다. 해당 생물이 어느 속, 어느 종에 속하는지가 표현된다. 이러한 분류를 위해서는 화석의 형태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고생물학 수업 대부분은 화석 생물의 해부도를 비교하는 것이다. 고생물학은 정말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과목이었다. 생물의 외형과 내부 구조를 세밀하게 그리면서 각 기관의 기능들도 꼼꼼히 외워야 했다. 조금만 모양이 달라져도 생물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많은 삼엽충 샘플을 배우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삼엽충의 진화 증거를 본 적이 없었다. 분명 교수님은 진화의 역사를 보여 준다고 확신하면서 가르쳤겠지만 모든 기관이 완벽하게 갖춰진 삼엽충들만 보았을 뿐, 그것이 어떤 조상으로부터 나왔는지, 혹은 점진적으로 어떤 다른 생물로 변해 가는지를 보여 주는 화석은 전혀 없었다.
<”진화론이 온 국민의 상식이 되었나?” 중에서>
2002년, 나는 경기도 지구과학 교사로 임용되었다.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도 맞아서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그런데 이따금 잠재되어 있던 ‘창조와 진화’ 문제 때문에 짐을 느끼곤 했다. 나는 해마다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와 같은 지질시대 역사를 ‘지구의 역사’ 단원에서 가르쳐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은 국가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교사 개인에게 교과 내용 편성권이 없다. 그러다 보니 모든 학교에서 각 학년마다 거의 같은 내용의 수업을 받는다. 이러한 정책이 고른 학력 수준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능을 하지만, 논쟁적인 내용이나 다양성 추구에서는 한계가 생긴다.
나는 우리 시대가 진화론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 엄밀히 과학적 사실 덕분이라기보다, 과학이라는 학문을 향한 보편적 믿음 덕분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사실이냐, 가정이냐’ ‘객관이냐, 믿음이냐’ 같은 철학적 사고에 미숙한 아이들에게 진화론을 과학적 진실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의 책일뿐 과학책은 아닌 건가?” 중에서>
크리스천 과학자들과 교계 유명한 분들, 심지어 신학자들도 일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종교적인 의미로만 해석되어야 하고, 자연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의 견해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즉 그들은 진화론도 받아들이고 창조주 하나님도 믿는다. 다만, 창세기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 일련의 변화를 보면서, 이제 ‘창조냐, 진화냐’의 과학적 논쟁을 넘어 새로운 국면이 되었음을 직감했다. 세상에서 진화론 패러다임이 보편적인 것이 되다 보니 신학조차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는 전제 위에 성경을 보는 것을 당연시하는 흐름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교회를 향해 ‘올바른 창조 신앙’을 진화론 위에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경’이 기독교 신앙의 근거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한 번은 진지하게 창세기와 충돌하며 이 시대를 덮고 있는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인지, 그래서 우리가 창조 기사를 그대로 믿는 것이 정말로 시대착오적인지 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문제를 미뤄 둔다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에 심각한 마비가 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