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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44538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23-04-12
책 소개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사랑은 무겁다. 그리고 가볍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같이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을 길
하나님의 우정
내면의 속삭임
이름을 부르다
사랑할 수 없는 것들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봄날의 햇살
사랑을 준비하다
모든 남자는 아담의 한 부분이고, 모든 여자는 하와의 한 부분이다
그건 동정이었다
인간의 귀는 두 개다
예수님의 MBTI는 무엇일까
캠핑으로 배우다
사랑은 셋이 하는 것이다
예수 믿고 천국이나 가라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입김의 신비
믿음대로 산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사람은 숫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나님은 왜 개입하지 않으시는가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이들
왜 사랑해야 해요?
네 몸과 같이
이상형은 없다
한나의 아이
우리는 밀어낸 적 없다
분리불안의 늪에서
사랑의 반대말
불쌍한 사람들
에필로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 서문에서
“과연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렸을 만한 질문일 법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땅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 소위 ‘천국’이라 불리는 곳에 대한 분량은 매우 적다. 그리고 그조차 비유나 상징으로 서술된 경우가 많기에, 무언가를 단언하기에는 지극히 조심스럽다. 다만 신학자들은 고민 끝에 이 질문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 땅에서 가졌던 사랑의 관계에 따라 그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당신이 어떤 색깔과 밀도의 사랑을 했는지, 혹은 어떤 사랑을 만들어 갔는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결국 사랑이 아닌 것들은 우리 곁에서 모두 지워지고, 오직 사랑만 남는다.
“내가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그 반려동물이 천국에 존재할지 안 할지는 모른다. 그것은 더 정보가 없다. 다만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Lewis)는 앞선 맥락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당신이 사랑으로 키우고 충분히 교감했던 반려동물이라면, 분명 그때에도 얼굴을 마주한 채 함께 존재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다시 언급하듯, 성경은 분명 훗날에 가게 될 그때의 이야기보다 지금 여기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압도적으로 더 많은 분량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여기나 거기나, 지금이나 나중이나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다름 아닌 ‘사랑’에 대한 것이다. 결국 ‘사랑’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랑이 아닌 사람은 사라지고, 사랑인 사람은 영원할 것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영원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세상’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데이비드 베너(David G. Benner)는 그의 책 《사랑에 항복하다》(IVP 역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의 회심은 그저 사랑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나 가치를 개발시켜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의 회심은 사랑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의문이 남는다. ‘사랑’이라는 게 너무도 모호하기에 그렇다. 물론 사전적 의미로는 한 문장에 담아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의 ‘사랑’은 마치 ‘하나님’이라는 표현의 어감만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처럼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것을 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내가 그러하듯 당신 역시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랑’은 이미 어떤 경로로든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버렸다. 잊기에는 너무 많이 들었고, 부정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현실은 역설적이다. 사랑을 너무 잘 알지만, 사랑을 전혀 모른다. 사랑이 너무 친숙하지만, 이보다 더 먼 것도 없어 보인다. 모르는데 해야 하는 것만큼 난감한 건 없다. 그래서 부담이고, 그래서 많이 힘들다. 이처럼 사랑하느라 힘든 당
신에게, 그간의 내 이야기들을 슬며시 전해 본다.
모두가 비난하는 자였지만, 동시에 그는 끝까지 그 손잡고 울어 주는 한 어머니의 자식이었다. 어머니의 울음 속에는 ‘세상 모두가 비난해도 너는 내 자식이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라는 무언의 말이 담겨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자연스레 우리의 짐은 늘어난다. ‘옷’이 그렇다. 많이 입을수록, 두꺼워질수록 점점 무거워진다. 그러나 누구도 이것들을 ‘짐’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것들이 추위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기에 그렇다. 분명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외면하기보다는 도리어 더 입으려고 한다. 예수님이 가볍다고 말씀하신 ‘내 멍에, 내 짐’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사랑하라’는 계명은 그런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언뜻 보기에는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나, ‘사랑하라’는 계명은 악과 고통이 만연한 이 세상과 여전히 존재하는 나의 죄성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이며, 수많은 거짓 계명을 강요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승리를 가져다주는 힘이다. 그래서 짐이 아닌, 우리를 쉬게 하고 살리는 본질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나를 살리는 것임을 믿기에 비록 아프지만 그리고 무겁지만, 그래도 사랑해 보련다.